이문동산책 일기
이문동 외대 정문 오른쪽엔 기립한 능소화나무가 있다. 마치 핫도그를 세워 놓은 듯하다.
점심 식사를 위해 자주 지나다니던 외대 정문에 우뚝 서있는 그 나무가 처음부터 눈에 들어온 게 아니다. 그저 꽃송이가 눈에 띄어 '능소화가 여기도 피었네'라고 인지했다. 그러다 눈에 익숙하지 않은 나무의 형태가 눈에 띄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능소화는 넝쿨형인 것과 달리 참으로 이상하게 생긴 그 나무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난 6월 그날 성수동 가는 길은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목적지를 향해 촉촉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뿌연 거리가 감성적인 느낌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가 어느 아파트 단지 방음벽에 늘어져 있던 능소화나무를 발견했고 빗방울이 맺혀 탐스럽게 피어있는 꽃을 보았다. 많이 보아 익숙한 그 꽃은 비속에서 더 아름다웠다. 매년 흔하게도 볼 수 있었던 그 꽃은 아름답다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날 빗속에 핀 꽃은 어쩜 이리 순수하고 아름답던지 능소화의 재발견이었다.
이날부터 능소화의 매력에 입덕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여기저기 피어 있는 능소화꽃들을 발견하며 자칭 능소화 관찰자가 되었다. 능소화는 6월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10월 말까지 꽃이 피었다. 세상에나, 5개월 동안 꽃이 피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피는 꽃이 또 있나 싶을 정도다. 아, 그리고 꽃이 질 때는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완벽한 모습 그대로 떨어져서 더 이쁘다.
통째로 지다 보니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어사화로 쓰였고 양반댁에만 심을 수 있었던 지체 높은 꽃이었는데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누구든 볼 수 있는 꽃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그 나무 앞을 지나며 이번에는 정문 안쪽으로 걸었다.
아무리 봐도 나무의 형상이 독특하다. 호기심을 못 참는 나는 나무 가까이로 가보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생각하며 다가갔다. 펜스로 가려져서 한눈에 안보였다. 가까이 가보았다. 역시나!!!
멀리서 볼 때는 그저 나무 기둥이 보이는 듯했다. 가까이 가보니 기둥은 소나무였고, 소나무를 기대며 휘감고 올라탄 능소화 넝쿨이 보였다. 그럼 소나무는 뭐지? 누군가 소나무를 전봇대처럼 이용해 능소화 넝쿨을 끈으로 묶어 놓은 거 보니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의도된 만남이었나 보다. 뭔가 속은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사소한 관찰력 덕분에 능소화나무의 정체를 확인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매일 지나는 수서 간 고속도로 방음벽, 한강변 도로, 중랑교 우회전 길 등을 드라이빙하며 관찰된 능소화는 당연히 넝쿨이 늘어져 있는 가운데 꽃송이들이 팝콘처럼 붙어 있었다. 그래 그게 바로 능소화다.
늘어져 있던 초록색 가지 위의 붉은색 꽃송이는 피었다가 떨어지고 또 새로 피었다가 떨어졌다. 그 넝쿨 아래 바닥엔 떨어진 꽃송이들이 가득 있었다. 그렇게 여름부터 가을까지 능소화는 능소화다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본 능소화다운 능소화는 늘 그랬다.
너무 당연했던 능소화의 모습으로 익숙했던 그 꽃송이가 어느 날 전봇대처럼 우뚝 서있는 나무의 모습으로 등장했고 그것이 소나무 기둥을 기생하고 있다는 비밀을 알아차린 뒤에도 그 앞을 지나며 능소화랑 눈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6월부터 푸른 넝쿨은 전봇대 같은 소나무를 제대로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11월이 되니 앙상한 넝쿨 가지만 남았다. 능소화의 꽃부림도 사라지고 잎도 사라지고 나니 숨기고 싶던 소나무를 더 이상 감추지 못하고 능소화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 영원한 것은 없지. 자연의 섭리는 그렇다.
#이문동산책 #외대정문능소화 #외대산책 #일상이그랜드투어 #능소화관찰자 #능소화덕후 #넝쿨식물능소화
#관찰력 #아티스트데이트 #이문동아티스트데이트 #이문동산책러 #이문동관찰자 #이문동어라운드트립 #인테리어디자이너이문동산책일기 #핫도그닮은나무 #한국외국어대서울캠퍼스정문 #한국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