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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금이 Nov 06. 2020

하얀 숲 004

남겨진 자들 1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일하는 중인가?’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사나운 꿈자리. 간밤에 꾼 꿈이 그랬다. 

신영옥은 간밤의 뒤숭숭한 꿈 때문에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 간호사인 딸이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시간이다.

‘전화해봤자, 바빠서 받을 겨를도 없을 거고...’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써보지만 영옥은 뒷목을 따라 싸하게 올라오는 한기와 소름에 괜히 머리가 무거워졌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공사장 크레인에 깔려 죽었을 때도 그랬고, 은안이 아빠가 택시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거의 죽을 뻔했을 때도 그랬다. 두 사람 모두 밝게 웃으며 저만치 영옥에게서 멀어져 갔다. 잡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잡히지 않고 빛 속으로 유유히 멀어져 가던 사람들. 다행히 남편은 의식도 되찾고 몸도 회복되었지만 허리는 아직도 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꿈에 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 은안이가 나왔는지 영옥은 두려움에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쳤다. 결국, 참지 못하고 몇 차례 전화를 은안에게 넣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음성 안내 멘트뿐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그래..바빠서 그런 걸 꺼야. 병원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영옥은 대충 옷을 여민 다음, 부엌으로 가서 야간 택시를 몬 후 집으로 돌아올 남편을 위해 아침상을 차렸다. 밤새 운전을 해서 그런지 요즘 들어 입안이 많이 까끌거린다며 밥상을 일찍 물리는 남편에게 보양식이라도 해 먹여야 하나 싶지만 형편이 빤 한지라 그것도 쉽지 않다. 지금 나가는 식당 말고 다른 식당을 하나 더 나가야 하나 싶지만 자신의 팔목과 무릎이 견뎌줄지  미지수다. 하나 있는 딸내미 남부럽지 않게 시집보내려면 지금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는 엄마의 죄책감이 현재로선 더 크다. 


‘날이 왜 이래..뭐가 이렇게 어두워?’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자니 잠시 주춤했던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은 탓에 영옥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에서 한참이나 밀려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에서 3단 우산을 꺼내 재빨리 펼쳤다. 하지만 워낙 갑자기 거세게 내린 비라 이미 영옥의 옷은 상당히 젖어 있었다. 정류장의 버스 대기 현광판을 보니 그녀가 탈 버스는 10분 후에나 모습을 드러낼 듯했다. 


‘이제는 받겠지?’


영옥은 은안의 근무 스케줄과 근무 시간을 되뇌어보며 딸의 전화번호를 찾은 다음 통화버튼을 눌렀다. 근무시간에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일이 끝나면 꼭 전화를 받는 딸이었다. 2~3번의 통화에도 핸드폰 전원은 계속 꺼져 있었다. 영옥은 간밤에 꾼 꿈을 상기하며 혹시라도 부재중 전화 목록을 보거든 바로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를 딸에게 남겼다. 그 사이 내리는 비는 더욱 세차게 변했고 영옥의 양쪽 어깨가 푹 젖을 무렵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은안이 엄마, 흑..은안이가.... 우리 은안이가..]


오늘 새벽에 꾼 꿈.

남동생, 영호의 죽음을 엄마에게 알리던 아버지의 목소리.

동생의 부고를 전해 들은 어머니의 넋이 나간 얼굴.

아버지의 침통한 말투가 덧입혀진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어머니처럼 넋이 나간 자신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영옥의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데자뷔인가 아니면 과거의 악몽이 현실로 이어진 것인가. 손에서 놓친 우산도, 온몸을 적시는 비도 자신을 이상한 듯 쳐다보는 행인들도 모두 현실 같지 않았다. 귀가 멍해지는 느낌과 함께 정상 주파수를 이탈한 기분 나쁜 이명이 영옥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물 웅덩이 깊게 파인 오래된 아스팔트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영옥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조난자처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부유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영옥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알 수 있었다.


은안이. 내 딸 은안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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