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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즈 Jan 20. 2024

촘촘하고 꼼꼼하게

빌런은 넘친다.     

인격적으로 결함이 심하고 상대를 괴롭히는데 도가 튼 사람들     

그러나     

촘촘하고 꼼꼼한 사람도 빌런이 된다.     

바로      

상사가 되었을 때       

        

교육행정직은 타 직종과 달리 인사이동이 잦은 편이다.     

2~3년간 근무를 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개인의 이동 시기는 모두 다르므로 한 사무실의 구성원이 자주 바뀐다.     

행정실장의 이동은 언제나 사무실의 이슈이다.    

           

보통 빌런이라는 이미지와 맞는 상황은     

대놓고 사람이 괴팍하고 화를 잘 낸다던가 본인의 기분에 따라     

결재를 안 해주거나 사무실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

    

여자 실장 중 빌런의 형태는 주로 꼼꼼함이 도가 지나친 분들이다.  

대부분 업무를 할 때 촘촘하게 꼼꼼하게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    

품의 금액 하나도 구매 금액과 차이가 나서는 안 되며,

구매 당시 금액이 달라지면 다시 품의하게 하고      

품의마다 견적서를 전부 첨부하고     

카드 내용을 복사해서 붙이는 것을 넘어서 귀퉁이에 사인을 하고     

업무 진행 중 돌발상황에도 상대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원칙에 맞지 않으면 담당자가 느슨하게 관리를 한 탓으로 몰아가는….     

이런 분들은 워낙 업무를 다방면으로 다 파악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알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그 방식에 반기를 들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하고 있을까?               


학교 근무자는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것이 시작이라 본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전국의 모든 학교에 셀 수 없이 많다.        


이익 창출의 업무는 제로인 상황에서     

성과가 드러날 일이 없는 업무만 주어진다.     

성취를 위한 도전과 모험은 필요하지 않다.     

기존의 업무를 얼마나 흠결 없이 완성했느냐가 중시되는 사회이다.     

디테일 하나하나에 열과 성을 다하더라도 그 성취가 눈에 드러나기 어렵다.     

또한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의 업무에 대한 기대치는 다르다.     

당연히 여자 직원이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잘할 것으로 생각하기에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더 열심히 더 해내야 하는 것이다.


능력주의 문화 속에 내가 내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업무밖에 없는데.

나를 갈아 넣어서 얻은 성취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부하직원일 때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이 상사가 되는 경우이다.     

그들의 기준을 맞출 부하직원은 많지 않다.    

수많은 디테일을 잡아내며 이룬 성취가 그들의 표준이라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은 결국 무능력한 사람이 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반짝반짝 빛나던 능력은      

결국 소모적인 일들까지 해내야 했던 과거로 퇴색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빌런이 되게 한 것이다.

               

교육행정직처럼 많은 여성이 근무하는 직장.     

거기다 교육이라는 주 업무가 아닌 행정을 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주체가 되기 어렵다.     

주체적으로 하기 어려운 소모적인 일들 속에     

승진하고 나를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의미 없는 일까지 해내야 했는가?     

그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이것이 나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 줄 거라 생각했을까?               

나의 능력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몰아쳐야 하는

능력주의의 풍토 속에 

결국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돌아보라 학교의 많은 여자들이 있지만     

꼭대기는 층은 누가 있는가?     

그러기에 많은 일을 끌어안고 해내야 나도 그 길을 갈 수 있다.      

그 속에 인정받고 정착할 수 있다.

그렇게 몰입되어 매몰된다.

               

촘촘하고 꼼꼼한 것이 늘 옳을 수만은 없다

그들이 수고는 고마운 일이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과연 모두에게 행복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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