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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즈 Dec 18. 2023

잊히지 않는 사람

얼마 전 작은 행사를 동료들과 함께 준비하고 성공적으로 잘 끝냈었다.     

그날 장소에는 많은 사람이 와서 말 그대로 흥행 성공     

그렇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너무 익숙한 그 머리 스타일, 옷, 체형      

나를 정말 괴롭히던 상사였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되돌아가는 내 모습이 싫어서 다시 그 길로 걸어갔다.   

아니었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인데 멀리서 보니 엇비슷해 보여서 착각을 한 것이다.      

                   

학교 행정실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구성원은 보통 4명 정도이다.     

4명이라는 숫자는 정말 작은 숫자여서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이상하다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하다.     

이상한 구성원이 하나라도 있으면 견제가 되지 않고 보통 나머지가 맞춰가는 형태다.               

나를 괴롭혔던 그분은 참 다양하게도 나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지나치게 나를 평가하는 일이었다.     

업무평가에 그치지 않고 나의 삶과 내 가족도 다 평가 대상이었다.     

주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퇴근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지나가는 작은 이야기에도 꼬투리를 잡아 평가했다.     

주말에 먹은 시켜 먹은 피자로      

나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서 손수 만들어 먹이지 않은 생각 짧은 엄마가 되고,     

퇴근하고 소아과를 갔더니 요즘 사람이 정말 많더라 했더니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아 비실비실해서 아픈 것이었다. 

그러기에는 난 병가를 쓴 일이 없는데 말이다.     

한 번은 친정엄마가 건강이 안 좋아서 우리 집에 방문을 못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외할머니의 사랑은 매우 큰 것이라 그럴 수가 없다며      

적극적으로 방문을 권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는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주위에 도움 없이 어린이집과 내가 오롯이 키우다 보니 아이들 병원 때문에 지각이나 조퇴를 쓰면     

본인도 아이 둘을 기르며 출근하는데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냐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     

본인 언니 자랑을 하면서 큰아이는 언니가 언니 집에서 잠까지 재워주며 길러주었고,      

지금 아이 두 명이 되고 나서는 잠은 못 재워줘도 저녁까지 먹여준다고 했는데 말이다.    

           

점점 말을 할 기회가 줄고 그저 기계적으로 업무를 하면서도      

업무 사이사이에도 평가는 끝이 없었다.      

나에게 제일 심했지만, 또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서 업무 중간, 점심시간 등      

학교 구성원들이 오며 가며 가볍게 담소를 나누던 행정실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졌다.               

내가 그분을 극복하거나 이겨서 뒤집어엎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결국 함께 1년 8개월을 근무하다 내가 육아휴직을 들어가는 것으로 도피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작년 여름 뜬금없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운전 중이라 안 받을까 하다가 둘째 아이가 가끔 친구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경우가 있어서 받았더랬다.     

"누구세요?"     

"어? 뭐야 내 번호 저장 안 되어 있어? 나 000이야."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요인즉슨 본인이 사무관 시험 대상에 올라서 함께 근무한 사람들에게 평가 메일이 무작위로 가는데     

혹 내가 그 메일을 받게 되면 잘해달라는 거였다.      

과연..... 나에게 할 부탁인가 싶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말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롭힌 사람은 정말 모르는구나,     

본인이 정말 잘하고 사는 줄 아는구나.     


최근에 만난 여러 사람에게서 사무실 빌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적인 점이 바로 본인의 잘못을 모른다는 것     

기억조차 못 하고 있다는 것     

진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새해가 되면 또 다른 발령지로 가야 하는 운명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들이 있을까?     

나이가 제법 들어서 웬만한 일에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직도 설레고 두렵고 그런 이중적인 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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