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연결 시 통화료가 발생됩니다. 삐--”
며칠 만에 전화를 걸었는데, 언니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메시지를 듣고 나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내 전화를 수신차단한 건가?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중에는 언니가 혹시 죽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둘러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 번도 넘게 벨이 울리고서야 전화를 받은 조카의 목소리에는 아직 졸음이 묻어 있었다.
“이모,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조카의 태연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심장 박동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 엄마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엄마 집에 안 계시니?”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 한껏 작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명상수련하신다고 가셨어요. 다음 주에나 돌아오신다고요.”
방금 전까지 온갖 망상에 빠져 산더미 같은 걱정을 했던 게 민망했지만, 내가 과한 상상을 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보다 네 살이 많은 언니는 내 눈엔 너무도 잘난 사람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피아노도 잘 치고 공부도 잘해서 초등학생 때는 전교 부회장까지 했다. 언니에 비하면 나는 뚱뚱하고 못생긴 찌질이였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기에 1년에 한두 번 명절 때를 빼고는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나는 직장생활로 바쁘고 언니는 아들 키우느라 바빠서 전화통화도 거의 하지 못하고 30년 가까이 살아버린 어느 날, 언니가 울면서 내게 전화했다.
“나 이혼할까 봐.”
이 날 이후로 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해서는 “역시 이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애들한테도 좋을 게 없을 것 같고.” 하다가 다음날에는 “아니야. 역시 이혼이야. 깨끗이 정리하고 새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했다. 이랬다 저랬다, 울었다 웃었다. 처음에는 결혼 보다도 훨씬 큰 일인 이혼을 나 역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언니의 감정에 따라 우왕좌왕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날 며칠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자니, 내 속에서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걸려온 언니의 전화를 받은 나는 또 똑같은 소리로 내 짜증을 돋우고 있는 언니를 향해 “이제 그만 좀 해.”하고 소리를 냅다 질러버리고 말았다. 내 말을 들자마자 언니는 TV의 뮤트 버튼이 눌린 듯 잠시동안 침묵에 잠겨 있더니 곧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괜한 소리를 해서 안 그래도 심란한 언니에게 상처를 줬네, 반성하다가도, 아니지 내가 뭐 못할 소리를 했나? 언니가 좀 너무하기도 했지. 뻔질났게 전화를 해서 이혼을 한다 안 한다. 내가 지칠 만도 했어. 괜찮아, 하며 자위하기도 했다.
언니는 그날 이후론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고, 언니의 침묵은 나를 슬슬 불안하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혼이라는 게 TV 드라마에서처럼 종이짝에 도장 꾹꾹 찍으면 끝나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님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삼십 년 넘게 살 맞대고 함께 애 낳고 키우고 살던 사람과 하루아침에 남남이 되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생각했다는 건, 언니가 그 이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이혼을 할만한 이유가 있다 해도 이혼의 결단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조카에게 “엄마, 집에 오시면 이모가 전화 왔었다고 꼭 전해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언니는 명상수련센터에 가셔 지금쯤 무슨 명상을 하고 있을까? 언니의 명상 끝에는 어떤 결론이 있을까?
전화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언니도 지금쯤 명상센터에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으리라. 텔레파시라는 게 있다면 지금 내 생각이 언니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언니, 미안해. 건강하게 돌아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