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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20. 2021

아빠의 4년 전 메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급하게 옛날 메일을 찾을 일이 있어서 메일함을 뒤지다가 아빠가 2016년 6월 7일에 보낸 이메일을 다시 보게 됐다. 사실 오늘이 두 번째가 아니고 지난번에도 봤었는데 메일을 열 때마다, 첫 줄을 읽는 순간부터 눈물이 밀려온다. 아빠가 집에 잘 도착했냐고 묻는 걸 보니 내가 4년 전 한국에 갓 귀국한 후 받은 이메일인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엄마와 내가 먼저 귀국했다. 아빠는 인도에서의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상태라 가족들을 한국에 먼저 보내야 했다. 엄마, 아빠, 할머니, 오빠, 나 이렇게 다섯 명이서 북적북적 살던 한국 집을 떠나 엄마, 아빠, 나 세 명이서 엄청나게 큰 인도의 3층 집에서 5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가족 단위는 다섯 명에서 세명, 그리고 엄마와 내가 떠난 후 아빠는 혼자가 되어 호텔 레지던스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에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외롭게 생활했을 아빠의 노고를 알기에 메일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파진다.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냈던 것처럼 인도에서 우리 세명은 행복하게 지냈다. 비록 사는 곳은 달랐지만, 부모님은 내가 한국에서 누렸던 많은 것들을 인도에서도 비슷하게나마 누리게 해 주셨다. 그들이 주셨던 사랑의 크기는 변함이 없었다. 한국 식재료가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했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그나마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보냈다. 인도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을 얘기하며 우리의 식사시간이 재밌어지고, 간간이 떠난 유럽 여행에서 쌓은 추억으로 매일을 살고, 한국에 남겨진 오빠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우리 세명은 똘똘 뭉쳤다. 외딴곳에 살았지만, 재미난 하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우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인도에서 살아남았다. 내가 한국으로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잠시나마 나의 보금자리라고 느꼈던 인도를 떠나야 했다. 인도를 떠난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빠가 앞으로 생활할 레지던스를 청소하고 아빠가 당분간 먹을 반찬을 엄마가 요리해서 냉장고에 쌓아뒀다. 나의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는 만큼 아빠와의 이별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 가족 모두 잘 버텼는데 인도에서 엄마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아줌마로부터 작별 인사 전화가 온 이후로 우리는 무너졌다. 엄마가 울기 시작하고, 나는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서부터 눈물이 터졌다. 공항 가는 길 내내 엄마와 나는 부둥켜 울었다. 심지어는 우리를 5년간 보필했던 기사 아저씨와의 작별이 슬퍼 울기도 했다. (마두 아저씨, 아직도 이름이 기억난다) 어쩌다 아빠를 따라 인도에 오게 됐지만, 그곳을 떠날 때는 마음이 달랐다. 아빠는 아직도 우리 가족을 그런 외지에 데려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아니야, 아빠. 절대 미안해하지 마. 나는 정말 매일이 재밌었고 우리 가족이 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았어. 아빠 덕분에 남들은 하지 못할 경험을 쌓았고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좋은 친구들을 얻었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8할은 인도였어. 


요즘 미래에 대한 고민과 현재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다. 여러 잡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 와중에 아빠의 메일을 읽으니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나를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고, 또 그 사람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던 다 잘할 거라고 용기를 주니 더 힘이 난다. 저 때는 입시를 준비하며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때도 아빠의 응원으로 잘 버텼고, 나름대로의 목표를 이뤘다. 지금의 경우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응원하고 있으며 난 내가 하던 대로 잘하면 되는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의 순서대로 이 또한 흘러가겠지? 4년 전 아빠가 그때 힘들어했던 딸을 위로해 줬던 것처럼, 4년 후에도 똑같이 힘들어할 딸을 위해 미리 메일을 썼다고 믿는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빠가 머피에게 4차원의 세계에서 무언의 암시를 줬던 것처럼, 아빠의 4년 전 메일이 꼭 지금의 내게 위로의 말로 들린다. 아빠 사랑하고 고마워 힘들 때마다 아빠 메일 읽고 용기를 얻을게.



2020년 11월 24일 주영.


p.s. 오늘은 마침 엄마의 생일이다. 엄마도 사랑합니다.


분당나무사랑남 나무 앞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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