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디 Jan 26. 2021

난 서서히 아픔에서 극복하고 있어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리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에게 “아직 아니야. 힘내”라고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영화. 마음을 다친 사람에게 아직 극복할 방법이 있다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영화. 결말은 우리 모두가 바란 '해피엔딩'이 아닐지 몰라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의 영화이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음이 아파 어찌할 줄 모르는 아픈 이들에게 추천한다. 아픈 마음을 치유받고 싶은 사람에게 바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시작은 비록 추운 겨울의 느낌이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추운 겨울로부터 약간의 온도 변화가 느껴진다. 주인공 ‘리 챈들러’가 그를 둘러싼 모든 아픔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극복할 방법을 찾은 것만 같다.





주인공 ‘리’는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괴팍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픔이 많을 것 같은 이 남자. 눈이 세차게 내리는 추운 겨울날 그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급히 어디론가 차를 끌고 간다.

도착한 곳은 맨체스터의 한 병원. ‘리’는 친형 ‘조’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생전 심장질환으로 오랜 시간 투병한 ‘조’는 결국 외동아들 ‘패트릭’만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리’는 갑작스러운 형의 사망 소식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미성년자 ‘패트릭’을 제외한 형의 유일한 직계가족이기에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리'는 형의 변호사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형이 죽기 전 동생 ‘리’를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정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는 이 사실이 믿을 수 없는 듯이, 자신이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 변호사와 얘기하던 도중, ‘리’는 갑작스레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과거는 고통스럽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리'의 기억은 산발적이다. 몇 년 전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아이 셋과 사랑스러운 부인 '랜디'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자고 있는 집의 벽난로 뚜껑을 닫지 않고 외출한 탓에 그는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만다. 구급 대원이 가까스로 구조한 '랜디'와 하룻밤 새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리'는 죄책감에 찌들어 살았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랜디'와 '리'는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던 '리'는 맨체스터에서 멀리 떨어진 보스턴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 그가 저지른 바보 같은 실수 때문에 아이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의 형이 죽어 조카 '패트릭'이 혼자 남게 되었다. '패트릭'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애석하게도 친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리'뿐이다. 아이들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빠져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리'가 과연 조카 '패트릭'을 맡아 키울 수 있을까? '리'가 겪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던 형 '조'가 무슨 이유로 아들을 동생에게 맡겼을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한없이 친절한 영화다. 처음부터 바짝 집중해서 영화를 시청하면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주인공에 너무 쉽게 감정이입이 돼 마음이 먹먹해질 수도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콕 집어 어느 구간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러닝타임 내내 마음이 먹먹해 눈물샘이 마르지 않는다.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해 '리'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아, 정확히 말하면 죽지 못해 겨우 살고 있다. 동생 '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사람은 형 '조'와 조카 '패트릭'뿐이었다. 아내 '랜디'가 원망감에 '리'를 떠난 후 '조'는 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던 사람도 바로 형. 형 '조'가 옛날 자신을 도와줬던 것처럼, '리'가 없으면 또 혼자 남겨질 '패트릭' 때문에 '리'는 어떻게든 생명을 부지한다. 


어쩌면 형 '조'는 일부러 '리'를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정했을지 모른다. 아들 '패트릭'을 '리'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동생 '리'를 '패트릭'에게 맡긴 것일지도 모른다. '패트릭'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금방이라도 목숨을 끊을 '리'를 생각해, '조'는 '패트릭'을 동생의 삶에 들여놓았다. 


아빠가 사라진 후 공황장애가 온 '패트릭'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사람은 바로 '리'다. '패트릭'이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것도 '리'다. 그런 '리'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 상처 받지 않은 척하지만, 결국 그가 가장 연약한 존재이고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어른에게도 상처가 있고 치유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는 한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기 전에, 그가 가진 내면의 상처,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뇐다.


이제 겨우 상실감으로부터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던 '리'는 우연히 길을 걷다 전처 '랜디'를 만난다. '랜디'는 이제껏 하염없이 '리'만을 원망해왔다는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의 심장에 비수 꽂은 말을 퍼부었던 것을 사과한다. 그리고 '랜디'는 '리'에게 용서를 구한다. 지금쯤이면 옛날 기억이 잊혔겠지라고 치부했던 '리'는 다시 한번 '랜디'와의 만남으로 그의 과거가 떠오른다. 


이 일을 계기로 '리'는 결국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는 것을 포기한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맨체스터에 산다는 것은 어쩌면 '리'에게는 과거의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들의 사나운 눈초리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리'는 그가 살던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패트릭'은 '조'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리'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조지'에게 입양 보내게 된다. '패트릭'에게 입양 사실을 말하는 순간 '리'는 그의 속마음을 터놓는다. 







다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난 견딜 수 없어. 삼촌이 미안해.
I can't beat it. I'm sorry.


추운 겨울이 끝날 무렵 '패트릭'과 '리'는 '조'의 장례식을 덤덤히 치른다. 장례식이 끝난 후 둘은 무심한 듯 야구공을 튀기며 걷는다. 몇 마디 주고받지 않지만, 그 둘은 너무나도 아픈 기억을 함께 공유했기에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혼자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이 슬픔을 함께 감당할 수 있음에 괜스레 감사해진다. 


그리고 영화는 '패트릭'과 '리'의 바다낚시 씬으로 끝을 맺는다. 시작은 '고독과 아픔' 이 넉 자일 지라도, 끝에는 실낱의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 '리'가 부디 아픔으로부터 치유돼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주인공의 행복을 이렇게 간절히 바란 적은 또 없을 것이다.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뷰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뭔데 우리 엄마를 '극성'이라고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