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으로
어릴 때 살던 골목의 모퉁이에 작은 건물이 한 채 있었다. 별로 높지도 않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았던, 보통의 건물이었다. 누군가에게서 '저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서 조금만 걸어가면 롯데월드가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잔뜩 김이 서린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풍경처럼 해상도가 떨어지지만, 분명히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건물의 지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곤 했다. 내 기억 속에서 평범한 건물의 지하는 수영장이었고 몇 분 정도 걷다가 보면 문이 하나 나오는데 그 문을 열면 롯데월드가 나왔다.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거의 평생을 롯데월드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살아왔지만, 그 시절 살았던 동네에서 롯데월드에 걸어가려면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럼에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나는 그 건물을 지날 때면 지하 수영장에 롯데월드로 연결되는 문이 있는 풍경을 떠올렸고, 그 비밀스러운 연결 통로를 동경했다.
어릴 때 살던 반지하 집에는 두꺼운 유리가 두 개 붙은 현관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낮잠을 자고 나오니 그 유리에 비치는 햇살이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렸다. 현관문을 열면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아닌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극장에 가본 적이 별로 없었던 학창 시절에는 영화관으로 향하는 검은 통로가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 것만 같아 친구 손을 꼬옥 잡았다. 커다란 화면 속에서 우주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 혼자 저 화면 속 세상으로 넘어갈까 봐 의자에 있는 손잡이를 꼬옥 붙잡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말도 안 되는 무언가를 늘 믿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골목 모퉁이의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롯데월드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있을 거라고, 환하게 빛나는 현관문을 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영화를 보다가 나 혼자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바랐던 걸까. 하지만 유난히도 더 어리숙하고 겁이 많았던 나는 비밀 통로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 볼 수도 없었고, 빛나는 현관문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고, 화면 속으로 들어갈까 봐 의자를 잡은 손에 더 힘을 줄 뿐이었다.
스스로를 공상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쓸데없이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기는 하다.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일을 앞두고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의 상상을 해놓는 습관이 있다. 긍정적인 결과가 펼쳐졌을 때와 그 반대의 경우로 일이 흘러갈 때. 예를 들자면 수능을 앞두고, 갑자기 시험을 너무 잘 봐서 생각도 하지 않았던 서울대 최상위권 학과들을 저울질하는 상상과 어려운 문제들만 잔뜩 나와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시간이 다 돼서 답안지를 백지인 상태로 제출해야만 하는 상상, '00는 올해,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습니다' 이렇게 아찔한 장면을.
20대 이후로 현실에 조금씩 적응을 하고 누구보다 나를 지키고 싶었던 나는 부정적인 결과를 상상하는 일에 더 무게를 두었다. 최악의 경우를 머릿속으로 먼저 연습해 보고 나면 현실에서 다가오는 결과는 대부분 크게 상처 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부정적, 비관적이라는 버전에 익숙한 내가 최근 들어 즐거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준비의 바이블과 같은 소설책을 써낼 거라며, 내 책이 도쿄 대형서점에 깔리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제대로 도쿄를 둘러보자며, 인터뷰를 하면서 에그자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에그자일이 콘서트 표 1장쯤은 보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웃는 얼굴로 재잘재잘 남편 앞에서 늘어놓는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둬야 하는 건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남편은 제발 그런 상황을 좀 만들어보라고 말한다.
상상을 이어가다가 이런 내 모습이 참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썩 유쾌해서 상상을 거두고 싶지가 않다. 이제는 롯데월드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다면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비현실적으로 빛나는 현관문을 바라보지만 말고 직접 그 문을 열고 빛을 맞아보고 싶다.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겪어보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없어진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귀신이 무섭고 고양이를 보면 깜짝 놀라지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