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조 May 04. 2021

내 취향에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사회 부적응자의 특징을 갖고 있어 좋은 점

 누워서 인스타를 구경하다가 어느 게시물을 발견하고는 생각에 빠졌다. '사회 부적응자의 특징'이라는 제목의 이미지에는 제목 그대로 사회 부적응자의 특징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첫 번째, 그리고 무엇보다 두 번째 항목에서 잠시 멈춰 스스로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매번 같은 것만 자꾸 먹는다'는 문장을 읽고는 특정 몇 군데의 식당에 자주 가고 마트에 갈 때마다 비슷한 식품들로 카트를 채우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뭐 대부분 다들 그렇지 않나? 그러면서도 나는 은근히 입이 짧은 편인지 같은 반찬을 세 끼 이상 먹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첫 번째 문장은 패스. 문제는 두 번째 문장이었다. 마음에 드는 곡은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는 게 사회 부적응자의 특징이란다, 헐. 나는 이런 내 특성을 이미 몇 번이나 말로 글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곤 했었고 몇몇은 공감해주기도 했었다. 


사회 부적응자의 특징이라며 돌고 있는 @인스타 이미지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하면 몹시 기쁘지만 자꾸 머릿속에 노래가 맴돌아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내 기억 속에 그런 첫 번째 경험은 쿨의 'All for you'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출발 드림팀'에서 배경음악으로 이 곡을 처음 들었는데 어린 내 마음에 확 꽂혔나 보다. 능숙하지도 않은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몇 번이고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요즘의 나는 이 노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정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던 탓인지,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갈 때마다 어떤 절절한 마음을 담아 목청껏 불렀던 탓인지 아직도 노래가 술술 떠오른다.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걸 보면 이 곡이 명곡은 명곡인가 보다. 


 수능이 임박했던 추석 명절,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틀 동안 집에 혼자 남았다. 연휴 동안 밀린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알찬 다짐 역시 있었지만 휘성의 신곡 발표와 함께 계획은 물 건너갔다.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했는데 듣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빨리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여러 노래들에 그래 왔듯 반복해서 듣고 질려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수시로 꽤 많은 노래들에 반했고 그때마다 질릴 때까지 듣는 과정을 반복했다. 


 노래 제목만 입력을 하면, 제목을 몰라도 가사의 일부분만 입력하면 듣고 싶은 노래가 뿅~하고 나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대학교 때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고,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고, 구글에도 검색을 해봤다. 어디서도 그 노래의 음원을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내 머릿속엔 그 노래가 재생이 되는데 그 어디서도 다시 들을 수 없다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한동안 듣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 어디에도 그 음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중고사이트에서 그 곡이 담긴 음악 시디를 구입할 수 있었다. 배송되는 그 며칠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정말 다행히도 무사히 그 시디를 받아볼 수 있었고 나는 남편에게 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자랑하며 큰 소리로 음악을 재생했다. 내 머릿속에 수없이 재생되던 그 노래였다. 음악 취향도 너무나 다른 남편이 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건 명백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머릿속으로 재생되던 그 곡이 컴퓨터로 나오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이 노래를 왜 이렇게 좋아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들어보니 약간 촌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물론 음악도 시대마다의 흐름이 있어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노래를 질리도록 들으며 설레 하던 과거의 내가 들으면 섭섭할 법한 말이었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학생 시절에 듣던 mp3를 발견했다. 과거의 내가 엄선한 이백여 곡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차에서 들으려고 당당하게 내 mp3를 연결했다. 무작위 순서로 내가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어릴 때 좋아하던 에초티부터 시작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20대의 나는 이런 노래들을 듣고 있었구나. 미스터투, 더블루 같은 옛날 가수들 노래가 나오는데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덩달아 웃어버렸다. 어느새 내 mp3가 옛날 사람 인증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질리도록 들었던 노래들이 재생되는데 그 시절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마냥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음악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듣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사회 부적응자의 특징대로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하면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는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음악은 내게 참 많은 것들을 전해준다. 질리도록 반복해서 듣던 그 시절의 공기와 느낌이 음악과 함께 되살아난다. 과거의 내 모습은 부끄러워하더라도 취향에서만큼은 조금 당당해지고 싶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 다른 거니까, 또 과거와 지금의 나는 취향이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하늘을 우러러 내 취향에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지금, 여기의 공기와 느낌을 새로운 음악 속에 담으며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글은 언제나 미완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