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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pr 30. 2021

내 글은 언제나 미완성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수험생 시절에는 경험해보고 싶은 게 꽤나 많았다. 직업 혹은 소속을 묻는 질문에 당당하게 글자 채워 넣기, 매달 월급날에는 혼자서라도 소소하게 외식하기, 주말에는 여유롭게 남자친구 만나기, 친구들과 여행 가기. 그리고 수험생 카페에 합격수기 올리기. 이전에 내가 선배들의 합격수기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부러움의 시선도 한껏 즐겨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도 마구마구 받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합격하자마자 합격수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정해놓은 목차대로 공부는 교육학, 전공(교육론, 문법, 문학) 순서로, 그 뒤엔 전반적인 생활 태도 쓰기로 틀을 잡았다. 얼마나 기대했던 순간이었는지, 한글 파일을 열고 순식간에 글자들을 쏟아냈다. 여덟 쪽쯤 썼는데 이 기세면 합격수기가 책처럼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게 아닌데. 새 파일을 열어 이전보다 간결하게 써보았다. 다섯 쪽쯤 썼는데 이전 버전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예상 독자를 배려한 수기가 아니었다.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는, 철저히 필자 중심의 수기였다. 아, 이게 아닌데. 결국 나는 합격수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여덟 쪽, 다섯 쪽 써놓은 미완성의 결과물이 내게 쓴 메일함 저 깊은 곳에 남아있을 뿐이다. 


쓰다 만 합격수기, 앞으로 평생 미완성 




 2020년 2월에 완성했다고 자랑했던 나의 첫 장편소설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A4 용지 분량과 200자 원고지 분량, 책으로 나왔을 때의 분량이 아직도 잘 와 닿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처음 다 썼다고 생각했을 때의 분량에서 수정하며 거의 절반을 지웠다. 처음이랑 목차도 구성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아마 제목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니, 경향은 둘째치고 이런 경우엔 나는 출판계의 초짜이고 출판사는 전문가니까 수용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몇 주 덮어놨다가 펼치면 또 고칠 부분이 보이고, 그 뒤에 다시 펼치면 또 고칠 부분이 보인다. 퇴고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 퇴고라는 것이 과연 끝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쓴 멋진 글을 보고 나면 또 자신감이 콩알만 해져서 나 같은 사람이 책을 내도 될까 싶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내 글을 다시 열어볼 때마다 나 혼자 또 웃고 있는 걸 보면, 적어도 나와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걸어본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싶은 글을 쓰게 된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작년에도 혼자 여러 번 고쳤고, 올해 출판사에서 피드백을 받고 한 차례 대폭 수정을 하였다. 그리고 아직도 수정은 이어지고 있다. 며칠 덮었다가 다시 보면 또 고치고 싶은데 과연 이 글에 완성된 형태란 존재할까 싶다. 어쩌면 책의 형태로 나와있는 다른 글들도 모두 아직 미완성, ing인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소설 관련 글을 올려 봅니다. 작년 초에 소설을 완성했다는 글을 남겼었는데, 한동안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셨던 분도 계시지 않았을까, 괜히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ㅎㅎ) 책의 형태로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몇 달째 수정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A4 용지로 집안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이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네요. 믿기든 말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틈나는 대로 고치는 것뿐입니다. 자신 있게 완성했다는 말을 이제 함부로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제 인생이 그러하듯 글 역시 언제까지나 미완성이겠지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가치를 부여해보고 싶어 집니다. 그럼에도 이제 제출 기한이 가까워져서요. 오래전 합격수기처럼 결과물도 없이 사라지는 글이 되지 않도록 남은 시간 더 힘내 보려고 합니다. 


재미있는 소식이 생기면 조금씩 또 남겨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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