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걸까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취미로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게 어려웠다. 내가, 감히 나 따위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나는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나름대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글쓰기라는 분야엔 여전히 어떤 로망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고상한 취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감이 부족한 성격에 고정관념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일은 알게 모르게 비밀만 만들어냈다.
얼마 전에 동아리 학생이 글짓기 분야에서 큰 상을 받았다. 학생이 잘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지만 자료 수집 단계부터 함께하기 시작해 두 번 정도 피드백을 줬다는 사실에 괜히 내 어깨가 으쓱했다. 아직도 좋은 글, 잘 쓴 글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력이 10년을 넘어가니 이제야 아이들 글에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찾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어렴풋하게나마 생겨나는 듯하다.
'곧'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막연하게 꿈꿔왔던 일이 곧 이루어진다니 아직 그냥 얼떨떨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키보드로 옮길 때 느꼈던 소소한 재미부터 시작해 원고를 완성했을 때 느낀 뿌듯함, 계약서에 서명을 했을 때의 감격스러움 등을 지나고 나니 습관적으로 또 걱정만 남았다. 진짜 출간이 되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일이 엎어질지 모른다는 글들을 보고 나서는 조심스러워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도, 가까이 지내는 선생님들도, 오랜 친구들도 아직 모르고 있다. 하지만 출간이 된다면 늦게라도 밝혀야 할 것이다. 내가 글을 썼다고, 내가 사실은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고.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을 하나둘 언급하면서 중학생이 된 지금이 일기를 쓰기에 딱 좋은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 억지로 꾸며내어 써야 했던 초등학교 때를 벗어나 혼자만의 비밀을 저장할 수 있는 시기가 드디어 도래했다고, 일기 쓰기를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엄마와 동생으로부터 일기장을 성공적으로 숨길 수 있을지 의견을 모아 봤는데, 얇은 일기장을 사용하며 문제집 사이에 끼워놓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일기장을 어떻게 숨기면 좋을지 지혜를 좀 나눠주세요ㅠ)
중학생 시절의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는 바로 '감정'이었다. 어릴 때의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조금 금사빠의 기질도 있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오빠들은 왜 이렇게 다들 멋있어 보였는지, 에초티 이후로 많은 오빠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는 어떤 연예인을 좋아해야 할지 제법 진지하게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시선이 현실로 옮겨올 무렵 어린 내 눈에 비현실적으로 멋있어 보이는(보였던) 남학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을 10대 중반에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자꾸만 생각이 나서, 그 감정의 무게를 혼자 품고만 있기에는 너무 버거워서 자기 주도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거의 매일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일기장을 펼쳤는데 어느 날에는 편지가 쓰였고 어느 날에는 시가 쓰였다. 그렇게 써 내려간 일기장이 세 권이 넘었다.
일기장을 펼치게 만들었던 감정이 유효기간을 다 해가던 시기의 어느 날, 문득 그 아이에게 무척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정신적 성장의 촉매제와 같은 느낌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독서량이 거의 0에 가까울 만큼 비어있지만 이런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데도 큰 기여를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 걸까. '좋아한다'는 감정에 여전히 묵직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인지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종종 글로 옮겨 놓고 싶은 감정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 옛날의 나처럼 지금의 나도 어떤 감정이 부풀어 오르면 글을 남긴다. 내게 글쓰기의 시작은 늘 '감정'이었다. 그런데 왠지 이런 감정을 떠올리면 기분 좋아서, 이 분위기를 오래 누리고 싶어서, 앞으로도 글을 많이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