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조 Jun 16. 2021

2만 원의 행방을 찾다가 돌아본 추억

이젠 그냥 그러한 추억의 향기

 몇 년째 여름마다 잘 입고 다니던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던 날, 계단을 오르면서 왠지 길이가 짧아진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거울을 볼 때마다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 이런 옷이 어울릴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귀여워 보이게 붙은 팔 부위 레이스와 A라인의 모양 등 전체적인 디자인이 이제 더 이상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딱 봐도 20대 옷 같이 생겼는데 따지고 보면 오래도 잘 입었다. 


 옷장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한 것 같아 어려 보이는 옷들은 과감히 버리거나 당근마켓에 올려놓고, 나이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마냥 저렴한 옷보다는 어느 정도 가격이 있는 데서 찾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딴엔 큰 마음을 먹고 몇 시간의 서핑 끝에 6만 원짜리 원피스와 9만 원짜리 원피스를 주문했다. 다음 날, 결제까지 완료한 6만 원짜리 원피스가 주문 취소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재고가 없다나 뭐라나. 그런데 다시 검색해서 같은 상품을 찾아보니 재고가 없는 게 아니라 가격이 2만 원 오른 거였다. 6만 원에 결제까지 마쳤는데 다시 찾아보니 8만 원대에 판매 중이었다. 6만 원에 사려고 했던 옷을 8만 원 주고 사기에는 썩 내키지 않았다.


 며칠 뒤, 9만 원짜리 원피스가 배송되었다. 날씬하지 않은 몸을 날씬해 보이게 만드는 옷을 찾는 일은 정말 어렵다. 벨트까지 채우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봤지만 그냥 그랬다. 불편하지 않게 입고 다니기야 하겠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후기를 올리면 포인트를 준다는 말에 다시 사이트에 접속했다. 며칠 전에 구입했던 인터넷 창을 다시 열었는데, '이럴 수가!' 나는 9만 원대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가격이 7만 원이었다. 주문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럴 수가. 누워서 인터넷을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정확히 9만 7천 원을 지불했는데 지금 가격은 7만 4천 원이었다. 이럴 수가. 반품 배송비를 빼더라도 환불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옷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6만 원에 판매하던 옷이 다음 날부터 8만 원에 팔리기도 하고, 9만 원에 판매하던 옷이 다음 날부터 7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어디 옷뿐일까. 시장의 논리에 따라 상품의 가격은 매일 달라질 것이고 돈의 가치 또한 그러할 것이니. 그런데 2만 원은 여전히 내게 꽤 큰돈이었다. 주문하자마자 상품의 가격이 2만 원이나 내린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환불의 기회가 있는데, 그런 무거운 마음으로 이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겨울부터였다. 용돈도 필요했지만 어리석게도 아주 조금은 아르바이트에 대한 로망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알바생이 왜 그리 멋있어 보였나 모르겠다. 동네에 있는 빵집(추억의 그 이름, 케익하우스 엠마)에서는 시급이 2,700원이었다. 이틀 정도 일을 했는데 정말 많이 어려웠다. 둔하고 손도 느린 탓에 나도 괴롭고 사장님도 괴롭고 손님들도 괴로웠을 거다.(ㅠㅠ) 그때만 해도 사람들 앞에서 쪼그려 앉아 바닥을 청소하는 일 같은 행동을 나는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어려서, 철이 없어서 돈을 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으로 구한 알바는 철판볶음밥 집 서빙이었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레스토랑이었기에 가게에 대한 이미지는 마냥 좋기만 했다. 돈을 쓰기 위해 갔을 때와 돈을 벌기 위해 갔을 때는 입장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엔 너무 어렸다. 나는 5시부터 11시까지 저녁 타임 서빙을 맡게 되었으며 시급은 3,000원(옛날 사람 인증)이었다. 하루에 18,000원을 벌 수 있었던 셈이다. 4시 50분쯤 가게에 도착해서 주방 뒤에 있는 방에 들어가 상의를 흰색 카라티로 갈아입었다.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점심 타임에 일하던 알바생이 퇴근을 준비했다. 


 어쩌다 보니 3월 직전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알바를 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젊은 남자 사장님이 편하게 해 주려고 던지는 농담을 천연덕스레 받아들이는 능력 따위는 없었던지라 매우 불편했다. 웃어넘기면 되는 가벼운 말들을 늘 눈 동그랗게 뜨고 심각하게 들었으니 사장님도 내가 꽤나 불편하셨을 것 같다. 알고 보니, 밥을 볶는 요리사들 사이에도 계급이 정해져 있었는데 부장님과 차장님을 구분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9시쯤에는 다 같이 모여 늦은 저녁 식사를 했는데 사장님과 부장님, 차장님, 여사님 수저를 다 다르게 놓아야만 했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메뉴가 다양해서 좋았던 게 알바생 입장이 되니 단점으로 작용했다. 김치 철판볶음밥, 햄 철판볶음밥, 베이컨 철판볶음밥, 마늘 철판볶음밥 등의 종류가 있고 모둠 철판볶음밥이라는 비싼 메뉴가 있었다. 여러 명이 오면 각기 다른 메뉴를 시켜서 한데 모아 섞어 나눠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앞에 몇 글자 다르게 붙은 메뉴가 가끔씩은 몹시 기억하기 어려웠다. '김치, 햄, 베이컨, 마늘 섞어서, 맞으시죠?' 주문을 받고 뒤를 돌아 사장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님이 뭘 주문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난감해했다. 


 납작하고 커다란 흰색 그릇에 볶음밥이 나오는데 한 손에 하나씩밖에 들 수 없으니 3인 이상이 오면 테이블에 서빙을 두 번 나가야 했다. 사장님은 사장님답게 한 번에 4인분을 서빙하는 신공을 갖고 계셨는데 그 기술을 내게 전수해주고 싶으시다며 왼손을 손가락 세 개와 두 개, 두 팀으로 나눠 그 위에 그릇을 하나씩 올리는 연습을 시키셨다. 나는 몇 번 해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저는 그냥 빠르게 두 번 왔다 갔다 할게요.'라고 말해버렸다. 감히 알바생이, 사장님이 시키는 걸 하지 않아서 당돌해 보였을까, 빠르지도 않은 애가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니 어이없었을까, 사장님은 몹시 언짢아하셨다. 


 돈 버는 일이 고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었으니 내 능력으로 내가 돈을 번다는 옅은 뿌듯함으로 부모님께 넉넉한 용돈을 받아 화창하게 20대를 시작하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을 억누르며 매일 4시 반만 되면 돈 벌러 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매일 18,000원씩을 벌었고 첫 달 월급은 318,000원이었으며 몇 달에 걸쳐 거의 100만 원 이상의 돈을 받고 나서 볶음밥 집 서빙을 그만두었다. 벌기엔 그렇게도 힘들었던 돈이, 쓰는 건 정말 금방이었다. 이후로도 틈날 때마다 이런저런 단기 알바들을 하며 용돈을 벌었는데 맹세코, 쉬웠던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스무 살에 알바를 할 때 잠시 직업병이 있었다. 식당에 가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을 다시 손에 잡아보며 무게가 어떠한지 서빙하기에 편리한 그릇인지를 나름대로 판단해봤다. 그리고 메뉴판 속 음식의 가격을 유심히 바라보며 이 음식 1인분이 내가 몇 시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인지 계산해봤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고 물병과 컵, 메뉴판을 테이블에 전달한다. 카운터 쪽에 서서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주시하며 부르기를 기다린다. 주문을 받고 철판 요리사분들께 메뉴를 전달한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단무지와 김치, 수저를 준비한다. 어쩔 때는 손님이 너무 몰려와서 창밖에서부터 다가오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들어오지 마라, 들어오지 마라.' 주문을 외기도 했다. 사장님이 아셨으면 크게 혼났을 뻔! 


 그렇게 두 시간을 보내면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이 '6,000원'이었는데 이는 돈가스 1인분 값밖에 되지 않았다. 싼 거로 먹으려고 안심 가스 말고 등심 가스를, 정식 말고 기본으로 시켜도 내 두 시간이랑 동급이었다. 두 시간은 120분인데 돈가스 1인분은 넉넉잡아 천천히 먹어도 30분이면 다 먹으니 참으로 원통할 노릇이었다. 돈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치사하고 속상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스무 살 때의 2만 원은 한 시간이 여섯 번 이상 곱해져야 주어지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최저 시급으로 따져도 세 시간도 안 걸려 얻을 수 있는 가치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옛날처럼 그 정도로 구두쇠로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배송받자마자 2만 원이 내려버린 옷을 마음 편하게 입을 수는 없었다. 조금 전에 환불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무리 시장의 논리로 시시각각 가격이 바뀐다고 한들 2만 원씩이나 마음대로 이렇게 금방 오르내리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2만 원, 2만 원이면 돈가스 2인분, 또는 치킨 1마리. 


 2만 원의 행방을 찾아 떠난 추억 여행에서 맡은 짠내마저 이젠 그러한 '추억의 향기'로 남았음을 깨닫는다. 흰색 상의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창밖을 바라보던 내 눈에 먹자골목을 지나는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였다. 사장님이 선곡한 당시 인기가요 목록은 몇 시간에 걸쳐 반복되고 반복되었는데,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유독 '추억의 향기'라는 노래가 먼저 생각난다. 오랜만에 그때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오늘의 나를 위로해보려고 한다. 


난생처음 돈을 벌며 수없이 들었던 그 노래, 추억의 향기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의 시작은 '감정'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