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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ul 27. 2021

요리를 하지 않는 자의 변명

한여름의 요리는 더더욱,

 집안일의 어려움을 토로하다가 새삼 옛날 어른들의 위대함으로 화제가 나아갔다. 냉장고도 작고 포장 음식도 나오지 않던 시절엔 거의 매일 장을 봐서 식사를 준비하셔야 했고, 세탁기가 보급화되기 전에는 손빨래가 일상적이었다. 식기세척기란 웬 말이냐, 식구는 많았으니 매 끼니가 끝날 때마다 설거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테고, 로봇청소기 이전에 진공청소기 이전에는 힘든 자세로 방바닥을 쓸고 닦고 하셨을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 그때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집안일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내가 무슨 집안일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 물으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다. 청소와 빨래는 일요일에 몰아서 한다. 남편은 집안일을 함께하는 걸 어려서부터 교육받아온 사람이라 나보다 조금 더 많이 하는 편이다. 남편은 집안 전체의 먼지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물걸레질을 하고(물론 서서, 청소기를 이용한다) 침구를 청소하고 분리수거와 쓰레기를 담당한다. 그동안 나는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정리한 후 화장실 청소를 한다. 어떻게 하자고 명시적으로 나눈 게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이렇게 역할이 나누어졌다. 올해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음식물처리기를 장만하기로 계획했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ㅎㅎㅎ)


 결혼하기 전에 나는,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자취를 하면서 한 가지씩 요리를 시도해 봤는데 대충 한 요리들이 내 입맛에 거의 다 잘 맞았다.(나는 별로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ㅎㅎ) 김치찌개를 처음 끓여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따로 뭘 넣은 것도 아니면서, 김치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요리를 잘하기 때문에 김치찌개가 맛있다고만 생각했다. 카레를 처음 만들어 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자신 있게 친한 선생님을 초대하기도 했었다. 


 몇 달을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살림을 합치고 딱 일주일. 일주일 만에 나는 내가 요리에 흥미도 소질도 없다고 결론지어 버렸다. 우리는 둘 다 아침 식사를 꼭 한다. 마침 방학이라 신경 써서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주려고 했었다. 결혼을 했으니 여자가 당연히 해야지, 라는 생각은 절대 아니었고 그냥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루는 청국장을 끓였고 하루는 김치찌개를 끓였다. 또 하루는 계란국을 끓였고 또 하루는 근대 된장국을 끓였다. 사실, 근대 된장국이었는지 아욱 된장국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때쯤에는 이미, 근대니 아욱이니 하는 생각들이 안드로메다로 떠나가고 있었다.


 저녁은 가볍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어려웠다. 첫날은 마트에서 혼합 샐러드를 사서 삶은 계란과 살짝 구운 두부, 방울토마토와 함께 냈다. 둘째 날은 전날 먹고 남은 혼합 샐러드에 사과와 바나나를 곁들였다. 나름대로는, 국수도 삶아봤고 호박죽 같은 것도 끓여봤다. 정말 대단한 일주일이었다. 4일째부터 서서히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같은 메뉴를 이틀 이상 안 먹으려고 했던 게, 매일 국물을 내려고 했던 게 너무 욕심이 앞섰던 걸까. 딱 일주일 그렇게 하고, 그런 생활은 막을 내렸다. 


 남편은 처음부터 내가 요리를 해줄 거라고 기대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결혼 전에 지켜본 내 모습이 꽤나 게을러 보였나 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침은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준비하게 되었다. 서로 규칙이랄 것은 없지만 그때그때 되는 사람이 요리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남편이 조금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도보 10분 이내의 거리에 반찬 가게가 네 군데나 있다. 처음엔 두 군데였는데 요즘 반찬 가게가 정말 잘 되긴 하는지 하나둘 늘어났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을 자주 못하긴 하지만 우리에겐 배달의 민족이 있다! 이게 없었으면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반찬 가게와 배달 음식이 없던 시절의 우리는 정말 어떻게 살았던 걸까. 


 특히 요즘 같은 때는 정말 더, 요리를 못하겠다. 요리를 할 때는 에어컨을 켜면 안 된다고 하는데 불 앞에 서있는 일이 웬만한 인내심을 갖고는 힘든 일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먼저, 그래도 우리 부모님 때만 해도 다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새삼 더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육아를 하면 나도 달라지려나 싶다가도 반찬 가게에서 안 매운 반찬 위주로 5만 원 넘게 결제하는 앞사람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거두었다.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할 만큼 바쁘지는 않다, 하지만. 


 요리를 가끔, 갈수록 더 가끔씩만 하게 되니 요리에 대한 의미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오늘도 반찬 가게에서 한 보따리의 음식을 들고 왔다.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샀다. 남편 생일에 정성껏 요리를 해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걸까. 이유를 둘러대고 싶어 진다. 왜 도대체 한여름에 태어난 거야. 


집에서 이런 요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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