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노을 Oct 04. 2019

구름 나라에 가는 법

“엄마, 여기는 구름 나라야?” 

비행기 안. 한 아이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바로 옆 엄마에게 물었다. 읽던 책을 접어 두고 눕혀 두었던 시트를 세운 뒤 창 덮개를 열었다. 바다와 숲이 모래사장을 사이에 두고 끝을 모른 채 펼쳐졌다. 구름이 그 위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신이 났는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창에 이마와 두 손바닥을 딱 붙이고는 스치는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 구름 나라는 처음 보는 것일 테니까. 그럴 만도 했다. 


창밖은 새파란 스케치북 위에 그려진 그림 같았다. 하얀 구름과 초록색 숲을 배경으로 삼고 그만큼이나 선명한 색깔로 칠한 건물과 차량을 엇갈리게 배치했다. 자칫 심심해 보일 수도 있었을 담벼락은 화려한 그래피티 그림으로 장식했다.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표정의 사람들과 나무그늘에서 늘어진 채 잠든 강아지도 구석구석 그려 넣었다. 형형색색의 지프니가 도로를 이리저리 내달리는 모습, 그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는 오토바이도 잊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도로 너머로 야자수가 나타날 즈음에서야 비로소 세부에 왔음을 자각했다.


세부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에게서는 여유와 유쾌함이 묻어났고, 복잡한 골목길 끝에는 어김없이 바다가 있었으니까. 모래는 반짝였으며 칵테일은 달콤했다. 굵직한 땀방울이 볼을 간질일 때면 바람을 보내 살살 달래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가 난생처음 만났을, 그 거대하고 흰 구름도 짙푸른 하늘을 이리저리 물들였다. 아이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기억할까. 구름 나라에 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스무살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