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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을 Jun 14. 2020

당신도 그리워질 거예요

모리셔스



모리셔스의 바다를 바라보며 얻은 확신은 딱 하나,
이 섬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라는 점이다.




신은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모리셔스가 먼저 탄생했고, 천국은 이곳을 본떠 만들어졌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말이다. 아니, 그는 그렇게 믿었다. 대체 어떤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섬이기에, 그가 그러한 찬사를 남겼을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 궁금증은 쉬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열 시간, 다시 모리셔스까지 여섯 시간. 환승을 위해 기다린 네 시간까지 합쳐 도합 스무 시간을 꼬박 날아왔다.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 또한 여행이라지만 지치지 않을 수가 없는 비행시간이었다. 그저 바라건대 이 길고도 긴 기다림을 보상받을 수 있기를.


비행 고도가 점차 낮아지는 게 느껴졌다. 좌석 벨트 표시등이 켜졌고, 기장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내 승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착륙을 준비하는 것일 터였다. 승무원의 요청에 따라 창문 덮개를 열어젖히는 순간 마크 트웨인, 당신의 말을 이해하고야 말았다. 천국이 있다면, 천국을 만든 신이라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확신한다.




인사부터 해야 했는데



이른 아침. 방에서 나왔다. 불과 몇 걸음만 내디디면 곧장 수영장이었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바다 쪽으로 뻗은 인피니티 수영장에 몸을 맡겼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을 천천히 유영했다. 물이 넘실대는 수영장 끝, 그 너머로 바다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의 햇볕을 머금었는지 검푸르게, 혹은 노란빛으로 물든 바다가 잔잔하게 일렁였다. 조심스레 바다로 다가갔다. 그래, 당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야 했는데. 모래사장 끝자락에 선 채로 두 발을 내버려 두었다. 바다는 스윽 몇 번을 다가오고,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는가 싶더니 이내 발끝을 톡톡 두드렸다. 모리셔스의 바다와의 수줍은 첫 만남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지나치게 차갑지도, 미적지근하지도 않았다. 딱 좋은 인도양의 체온. 아직 공기가 선선했으니 더욱 그렇게 여길 법도 했다. 기꺼이 그 품에 안겼다.




달콤하고 살벌했던


볼 만한 것이 많다는 가이드 스티브의 말투에는 약간의 설렘이 묻어났다. 날씨가 좋았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무색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차창 밖 풍경은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초록빛 사탕수수는 세상을 정확히 세 등분으로 나누어 캔버스를 수놓았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설탕박물관. 그래서 오는 길에 그렇게 사탕수수가 보였던 걸까.



박물관은 옛 설탕 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설탕을 만들어 유럽 등지로 실어 날랐을 때의 모습을 재현해 둔 풍경이 가장 먼저 등장했다. 스티브는 다소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설탕을 즐겼던 중동 지역과는 달리, 유럽은 중세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그 맛이 전해졌어요. 달콤한 소금이라는 별명과 함께.” 달콤한 소금이 있다니. 여태껏 꿀이나 여러 과일로 단맛을 탐닉해 왔는데, 약간의 가루만으로도 그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니. 유럽은 그렇게 설탕에 빠져들었다.



걸림돌은 단 하나, 가격이었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은 일부 열대 지방에 불과했고, 유럽까지 오는 운송비도 적잖았기 때문이다. 스티브는 설명을 이어갔다. “유럽의 귀족들에게만큼은 가격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설탕으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는 걸 자랑으로 여겼고, 샹들리에 같은 장식이나 조각 작품까지 만들어 거실에 전시했을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설탕은 사치품이었다. 그렇다면 더 치열하게 얻어야 했다.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유럽 사람들이 필요한 땅을 찾아서 기꺼이 노를 저었을 때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섬을 찾았던 것도 이 시기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곳에 가장 먼저 닿았다. 그들이 다녀간 즈음부터 이곳에서 사탕수수의 흔적이 발견된다니, 설탕을 향한 욕망의 손길이 이곳까지 뻗친 셈이었다. 본격적으로 사탕수수 농장이 생겨났던 것은 프랑스가 섬을 점령한 직후부터였다고. 사탕수수를 재배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임을 알았던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고 와 농장을 키워나갔다.


사탕수수는 섬 전체를 뒤덮었다. 숲은 줄어들었고, 사탕수수 농장은 계속 늘어가고만 있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섬의 대부분이 사탕수수 농장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설탕이 한때 모리셔스를 먹여 살렸던 것은 맞아요. 이제는 설탕이 흔해졌지요.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사탕수수 농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대신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어 환경을 회복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요.” 스티브의 목소리에는 처음과는 다르게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일행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기념품점. 미묘하게 다른 맛을 보여주는 설탕이 매력적이었지만, 모리셔스의 또 다른 특산물인 럼(Rum)도 관람객에게는 인기였다. 무료로 맛을 볼 수 있었다. 순수한 럼은 패스. 바닐라나 커피 향을 첨가해 누구나 쉬이 즐길 수 있게 만든 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텐더의 권유에 모든 종류의 럼을 다 맛보고야 말았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


# 설탕박물관(L'Aventure du Sucre)

- 위치: B18 Pamplemousses MU 21001, Pamplemousses, Mauritius

- 전화: +230 243 7900

- 웹사이트: aventuredusucre.com

- 운영시간: 09:00~17:00

- 입장요금: 성인 400MUR / 어린이(6~13세) 200MUR




세계를 한곳에 모아두었어요


철제 대문을 지나는 순간, 청량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돈다. 햇볕을 받으며 한창 달아올랐던 몸의 열기가 조금은 진정되는 듯하다.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 마리는 눈앞 나뭇가지 위에 앉아 배꼼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중창단을 결성한 지는 꽤 된 것 같았다. 이따금 부는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오가며 경쾌한 소음을 곁들인다. 목덜미를 스윽 훑던 땀방울이 체온을 조금 낮추어주는 게 느껴지는 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런 공기, 한국에서는 이제 쉬이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열성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공기가 맛있다는 느낌을 잊지 말아야지. 어쨌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여기.



모리셔스의 국부, 시우사구르 람굴람 경(Sir. Seewoosagur Ramgoolam)의 이름을 딴 이 식물원은 무려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작은 프랑스에서 온 총독 저택의 정원이었다. 식물원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후추로 유명한 프랑스의 식물학자 피에르 푸아브르(Pierre Poivre)라는 인물이다. 향신료에 조예가 깊었던 그가 정향과 육두구 등을 들여와 이곳에 심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리셔스의 기후가 갖가지 향신료를 재배하기에 좋은 환경임을 알아내고서 말이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식물을 함께 심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어나갔다고. 남반구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스티브의 설명과 함께 식물원을 거닐었다. “약 500여 종의 식물이 식물원 내에서 자라고 있어요. 나무는 총 60여 종이 있고, 그중에서 야자수가 열여덟 종이나 됩니다.” 수십 년 된 녀석들은 기본, 수백 년이나 살아온 나무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많았지만, 말레이시아나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건너온 녀석들도 상당했다. 대부분은 열대 혹은 아열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항해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가 세계 각지로 탐험을 나섰던 성과를 이 공간에 압축시켜 놓은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였다.



“이 식물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있어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공간입니다.” 스티브가 우리를 이끈 곳은 바로 네모난 연못이었다. 직경 3m에 달하는 빅토리아 수련이 가득했다. 갓난아이를 올려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다고. 차마 잎 위에 올라가 볼 수는 없었는지 동전을 하나씩 던져둔 흔적이 내심 귀여웠다. 사이사이로 한 송이씩 피어난 연꽃들. 그 너머로 펼쳐지는 식물원의 풍경은 왕의 정원 한가운데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영국이 모리셔스를 통치할 당시 이 식물원의 이름이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이기는 했다.


# SSR 식물원 Sir. Seewoosagur Ramgoolam Botanic Garden

- 위치: SSR Botanic Garden, Royal Road, Pamplemousses, Mauritius

- 전화: +230 243 9401

- 웹사이트: ssrbg.govmu.org

- 운영시간: 08:30~17:30

- 입장요금: 200MUR




불행한 그 곶


휴양지의 해변이라면 으레 눈에 띌 법도 한 기념품점도,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도 없다. 삼삼오오 모여서 인도양의 햇살을 즐기는 이들, 그늘에 몸을 뉘인 채 낮잠에 빠진 강아지, 바다에 뛰어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영 실력을 뽐내는 아이들뿐이다. 한껏 즐거워 보이는 커플 여행자는 ‘인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이 잘 나오기로 유명한 장소라는 소문을 듣고는 찾아온 듯하다. 잔잔한 파도, 그늘의 결을 따라 흐르는 바람. 고즈넉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곳의 이름이 ‘불행한 곶’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캡 맬로우(Cap malheureux). 모리셔스의 북쪽 끄트머리인 이곳은 프랑스어로 불행한 곶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810년, 영국군이 모리셔스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을 몰아내게 된 첫 번째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해변 앞에 바위와 섬이 많은 탓에 이곳에서 침몰한 선박이 많았다고도 한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 일대에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불행한 곶’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었을 터.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빨간 지붕의 성당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난히 예쁜 이 성당이 이곳에서 스러져갔던 영혼을 위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캡 맬로우 성모마리아 성당 (Notre-Dame Auxiliatrice de Cap Malheureux) info

- 위치: Cap Malheureux, Grand Baie, Mauritius

- 전화번호: +230 208 3068




일요일에도 시끌벅적


지갑을 열기로 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지역의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일정만큼은 언제나 기대될 따름이다. 현지인의 일상 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그 알량한 결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장 특유의 복작거리는 분위기가 우리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지름신을 일깨웠다. 모리셔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열대 과일, 집에는 절대 사 들고 가지 못할 것만 같은 향신료, 모리셔스의 특산물 중 하나라는 바닐라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여행자들이 아니던가. 갖고 가지 못할 것들은 과감히 포기했다. 시선은 기념품에, 특히 가방과 마그넷에 쏠렸다.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가방은 인도양의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작은 붓으로 조심스레 칠해 완성했을 마그넷은 조금 조악했지만, 그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야 있나.



우리를 성공적으로 낚았던 상점 주인장은 손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물건을 하나씩 추천해주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맞다. 그는 꾼이었다. 그에게 홀려 닫힐 줄을 모르던 지갑을 한참 달래고 나서야 우리의 쇼핑은 끝을 맺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잊을 만하면 “아, 그걸 사야 했는데.”를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말이다.


#  포트루이스 센트럴 마켓 (Port Louis Central Market)

- 위치: 9 Corderie St, Port Louis, Mauritius

- 운영시간: 05:30~17:30 (매장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모리셔스의 갠지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는 땅이지만, 인도인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영국이 이 섬을 관할할 때 비슷한 식민지 신세였던 인도의 주민들을 이 지역으로 옮겨온 것이 큰 이유. 노예제가 폐지되며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인력이 필요했고, 인도인을 계약 이민 형식으로 데리고 와 이곳에 정착시켰다. 자연스레 인도의 문화가 많이 녹아들었다. 힌두교가 그 대표적인 사례. 인구의 절반가량이 힌두교 신자들이다.



인도에서 머나먼 바닷길을 건너온 이들은 고향을 그리워했다. 특히 그들이 성스럽게 여기던 갠지스강을 그리워했다. 결국 그들은 모리셔스에서 비슷한 곳을 찾아 갠지스강처럼 여기기로 한다. 그랑 바생(Grand Bassin)이다. 사화산 분화구를 찰랑하게 채운 호수. 이곳의 물을 모리셔스의 갠지스라 불렀고, 근처에 힌두교 사원을 세워 신을 만나고자 했다. 그랑 바생 일대는 모리셔스에 사는 힌두교 신자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공간이다. 여러 개의 사원이 자리하고 있고, 거대한 시바(Shiva) 신과 두르가(Durga) 신의 동상도 설치되어 있다.



힌두교도는 아닌 터라 조금은 조심스럽게 사원으로 들어섰다. 꽃과 주전부리, 돈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찾아온 신자들은 줄을 서서 차례로 예를 갖추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그 사이에 서서 쭈뼛거리고 있는데, 승려가 손짓한다. 이리 오라면서. 조심스레 다가갔더니 이마에 빈디를 찍어준다. 그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행운을 빌어주었다.


# 그랑 바생(Grand Bassin)

- 위치: B88 - Grand Bassin Road, Mauritius




김 기사, 달려!


빗물이 헬멧에 뚝뚝 떨어졌다. 버기카에 창문을 달아주는 자비 같은 것은 없었다.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판초 우의는 거부했다. 이제 이 정도 비는 맞아줄 수 있다는 호기였다. 모리셔스에 충분히 적응했다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간헐적으로 쏟아졌던 비 탓에 진흙으로 변한 땅은 푹푹 꺼졌고, 이따금 등장하는 물웅덩이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은 잠시였다. 카릉거리는 엔진음이 묘하게 모험심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돌멩이. 급격한 오르막길도, 울퉁불퉁한 산길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저 거칠게 튀어나갈 뿐. 쭉 뻗은 사탕수수 밭 사이를 지날 때는 엔진의 온 힘을 다 쏟아내기도 했다. 함께 탄 일행이 행여나 다칠까봐 처음엔 조심스럽게 운전하려고 했지만, 스티어링 휠까지 타고 올라오는 전율을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액셀러레이터를 꾸욱 밟을 수밖에.


# 헤리티지 네이처 리저브(Heritage Nature Reserve) 버기카 액티비티

- 위치: Bel Ombre, Mauritius

- 전화: +230 623 5615

- 웹사이트: heritagenaturereserve.com

- 운영시간: 09:00~16:00 (하루 4회 운행)

- 입장요금: 2,600MUR (2인, 1대 기준, 홈페이지에서 예약 필요)




도도새의 날갯짓 


이번 여행 내내 도도새를 만났다. 모리셔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니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기는 했다. 공항부터 거리, 식당과 호텔에서, 박물관이나 여행 안내서에도 도도새가 있었다. 시장 매대나 기념품점은 기본이었고. 그 모습도 다양했다. 그림이나 조각은 당연하고, 목걸이나 귀걸이 등 장신구에도 어김없이 도도새가 등장했다. 못 본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실물이다.


도도새는 멸종했다. 이 섬에서만 살아왔던, 자신의 땅에 침입한 낯선 생명체에게 친근함을 표했던, 천적이 없어 날개마저 퇴화했다던 녀석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모리셔스에 사람의 발길이 닿기 시작한 후 20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바보’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이름을 붙인 인간들의 무심한 손길에 의해 절멸했다(‘도도’는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실 도도새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유럽 대륙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외래종이 이 땅을 덮쳤다. 사탕수수 농장은 섬의 80% 이상을 차지해버렸고, 본래 이 섬에 없었던 동물들을 점령했다. 이미 사라졌거나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이 꽤 많단다. 인간이 이 땅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리셔스는 고유의 자연환경을 잃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10여 년 전, 환경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샤마렐(Chamarel) 지역에 모리셔스 고유종을 위한 파라다이스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에보니 포레스트는 모리셔스의 환경을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모이는 공간이에요.” 숲을 관리하는 해설가는 열의에 찬 표정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이곳에서는 모리셔스의 토착종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외래 잡초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토종 식물을 심었지요.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도 이 숲에 방생했지요. 지금은 생태계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들로부터 숲을 지키는 단계입니다.” 해설가는 박물관 한쪽에 잘 보관된, 거대한 알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도새의 알입니다. 이제 도도새는 없지만, 우리는 이런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해요.” 에보니 포레스트의 존재 이유였다.


박물관에서 숲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사파리 지프를 이용해 숲을 탐방했다. 이곳에서는 흑단나무를 비롯한 모리셔스의 고유종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40여 종의 모리셔스 토착 동물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해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숲이 워낙 울창한 탓이다. 동물들에게는 그만큼 아늑한 집이 되어줄 테지만. 누군가 도마뱀을 보았다는 경험담을 전해왔으나, 이내 쏟아지는 비에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숲이 머리 위를 감싸주는 게 좋았다.



비는 여느 때처럼 금세 멎었다. 다시 사파리 지프를 타고 한참을 올랐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만든 길이라는 사실이 엉덩이를 거쳐 척추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기둥을 부여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섭라임 포인트(Sublime Point). “이제 곧 엄청난 풍경을 보게 될 거예요. 이곳의 이름처럼요.” 5분쯤 걸어 들어갔을까. 앞에서 탄성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 그 탄성을 이해했다. 아름다웠다. 모리셔스를, 도도새가 누볐을, 이토록 환상적인 모리셔스를 표현하기에 더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마크 트웨인마저도 ‘천국’에 비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 에보니 포레스트(Ebony Forest)

- 위치: Seven coloured earth road, Chamarel 90409, Mauritius

- 전화: +230 460 3030

- 웹사이트: ebonyforest.com

- 운영시간: 09:00~17:00

- 입장요금: 성인 450MUR / 어린이(5~12세) 270MUR




Au revoir!



옅은 구름 사이로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엎치거니 뒤치거니 하는가 싶었는데 서로 어우러지며 파스텔 톤 빛깔을 선보인다. 해가 수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색이 괜스레 마음을 간질인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모리셔스에서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노을인데. 바람도 멎었다. 온종일 괴롭히던 비구름은 등 뒤에 서서 노을의 시간이 끝나기를 오롯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은 느리게 가기를 바랐다. 돌아가면 한동안 이 섬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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