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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Aug 01. 2023

랜덤으로 만난 사이

눈꽃 에세이 1

부모의 조건 


    

 대학 동기 언니를 몇 년 만에 만났다. 벌써 쉰을 훌쩍 넘긴 언니는 그 사이 두 자녀를 미국과 캐나다에 각각 유학을 보냈는데, 남편과 교육관이 달라 늘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허리띠를 졸라매어 유학을 보낸 만큼 남편은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하루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를 바랐고, 반면 언니는 아직 젊으니 실패를 하더라도 인생에 다양한 경험을 자유롭게 해 보기를 원했다. 이렇듯 서로 아이들에게 삶의 다른 나침반을 내밀었고, 그들이 누구의 뜻을 따르는지 살펴보며 부부는 알력 싸움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둘 다 틀린 의견이 아니고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난 서른이 다 되어가는 자식들에게 그런 조언을 가장한 간섭이 과연 득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아직 경제적인 면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그런 조언들이 상도덕(?)에 어긋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언니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교사 생활을 하셨는데, 꼼꼼하고 강직한 성격에 시간관념이 매우 철저하셔서 평생을 지각과 결근을 안 하시고 자녀들에게도 그런 생활 태도를 지킬 것을 강조하셨다고 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아버지가 아닌 선생님의 모습으로 생활을 하셔서 자녀들이 잘못을 하면 반성문을 써오게 하거나 스스로 맞을 매의 양을 정해서 체벌을 하시는 등 엄격한 규율과 규칙으로 자식들을 학생처럼 훈육하셨다고 했다.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걸 아버지가 너무 싫어해서 지금도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늦을까 봐 항상 과하게 신경을 쓴다. 그놈의 영감쟁이가 우리를 강박증 환자로 만들었다.”고 언니는 여동생과 지금도 아버지의 교육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고 했다.      


 그러나 언니의 하소연을 듣는 내내 내 입맛은 썼다. 물론 집은 학교가 아니기에 선생님 같은 아버지와 사는 것이 힘들 수도 있었겠지만, 평생을 한 번도 남의 밑에서 일해 보지 않고 사업만 하면 망해 먹었던, 그래서 경제적 안정감을 자라는 내내 주지 않았던 내 아버지와, 부모 때문에 힘들었던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다른 부모들이 배우지 못해 농사나 힘든 노동일을 하며 살아가야만 했을 때 언니의 아버지는 평생을 교직에 있으셨기에 넉넉하지는 않았을망정 자식들에게 안정적인 경제 여건을 만들어 주셨고, 덕분에 언니는 평생을 '교사'의 자식으로 살면서 누린 혜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흔이 넘은 어머님이 아직도 아버님의 연금으로 경제적으로 자식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셨기에, 언니에겐 자식들을 둘이나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선생님 같았던 아버지에 대해 자신을 강박증 환자로 만들었다는 언니의 넋두리는 내게 완벽한 부모는 과연 존재할까?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졌다. 부모에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자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를 받거나 선한 영향력을 받거나 강해지거나 약해지거나 영혼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어른이 된 우리에게 남겨진 부모에 대한 기억은 극복해야 될 트라우마거나 애증의 마음인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태어나서 만나게 되는 부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전부이다. 다른 부모들을 다양하게 겪게 될 일이 없으니 다른 상황이 주는 어려움이나 우리 부모에게서 받은 혜택이 특별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일이 별로 없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부모라도 몇십 년을 함께 살다 보면, 그들도 인간인지라 의도치 않게 자식들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순간을 자식들에게 들키기도 한다. 그러니 애당초 완벽한 부모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맞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가 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인생이 망했다거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부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물론 평균치를 벗어나는 병리적 상처를 받은 경우는 예외임.) 어릴 때 받은 유년의 상처 때문에, 부모에게 받은 물질적 부분이 너무 적어서, 남들처럼 공부시켜 주지 않아서 내 인생이 꼬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 수많은 핑계 없는 무덤 사이로 숨고 싶은 나약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내 주위에는 유독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들이 많은데, 심지어 부모의 결혼 횟수가 양쪽 합해서 다섯 번인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 손에 자랐음에도 잘 성장해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기 몫을 충분히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때인가 부모님 원망한 적 없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는 분명 억울하고 원망했던 순간이 있었던 거 같아. 하지만 지금은 한 인간으로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고, 부모에 대한 마음의 부채감이 없어서 완벽한 독립자로 살 수 있는 내 삶이 더 좋아.”라고 대답했다.

 나도 평생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 안정을 주지 못했던 부모님 덕분에(?) 철저한 경제관념을 갖게 되어서 그 부분에서는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릴 때 일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셨는데 나이 먹은 지금까지 가정 살림은 내가 제일 잘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안쓰러워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면에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작은 나무도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는 잘 자랄 수 없는 것처럼 부모 자식 관계도 적당한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 나를 포함한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앞으로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잘 돌보고 죽는 순간까지 경제적 독립자로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각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바랄 수 없다. 늙어서 젤 무서운 것이 ‘자식 리스크’라는 말이 있지만 반대로 자식만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자식에게 독립하여 살 수 있는 삶이 단단한 인생인 것 같다. 

 내가 주는 무한한 사랑이(?) 자식에게 족쇄가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그리고 우리 두 딸에게 전해주고 싶다.

 “랜덤으로 만난 사이치고 이만하면 서로 족하다.”          



     

 (첫 번째 에세이 끝)      



- 웹진 <숨 빗소리>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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