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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Sep 23. 2023

테로 치니까 테니스 아닌가요?

눈꽃 에세이 8

테로 치니까 테니스 아닌가요?

- 눈꽃



 “넌 정말 천재 같애.”

 “진짜요?”

 “테니스 면이 이렇게 넓은데 어쩜 그렇게 테만 맞출 수 있는 거니?”

 “테로 치니까 테니스 아닌가요...ㅜㅜ ”


 살면서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몰입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남들이 재밌다는 여러 가지 게임이나, 쇼핑, 술, 심지어 연애까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요 몇 년 간 나를 중독시킨 대상이 생겼다. 바로 테니스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회원모집’ 현수막을 보게 됐고 전화를 걸었다. 그때 당시 회장을 맡고 계셨던  K싸부님이 초보자도 가입 가능하고, 배우고 싶다면 무료 레슨도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월회비 3만 원만 내면 무료 레슨(이 정도면 공짜지)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코트가 있으니 너무 좋았다.

 그래서 시작한 테니스와의 동행이 어느덧 3년이 되었다. 6개월쯤 배우면 사람들하고 신나게 게임도 하고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전문 레슨장이 아니기에 회원들이 게임을 끝낸 후 잠시 쉬는 10분 정도만 틈틈이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를 지도하시던 K싸부님은 실력과 인품이 모두 좋아서 항상 열과 성의를 다해 테니스를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제자인 나였다. 살면서 운동신경 없다는 소리는 별로 안 듣고 살았는데, 테니스를 배우면서는 내가 진짜 몸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라켓으로 공을 쳐서 네트 위로 넘기는 단순한 동작에 이토록 많은 기술과 순발력이 필요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릎은 굽혀지지 않고, 발은 거북이고, 손목엔 힘이 없으니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았다. 구력이 있는 선배들은 보통 병아리(테니스 초급 단계)와 게임을 하기 싫어한다. 타짜들이 민화투 밖에 못 치는 사람을 노름판에 끼워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드디어 1년쯤 지났을 때 코트에서 첫 게임을 하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탁구 라켓으로 친들 그리 공을 못 맞출 수 있을까 싶었다. 공은 발보다 항상 빠르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날이었다. 보통 동호인 테니스에서는 복식경기를 하는데, 내가 실수를 하게 되면 파트너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공이 날아오면 바운드돼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초보자들은 조급하게 바로 쳐야겠다는 일념으로 공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러면 절대 공을 칠 수 없다. 그래서 젤 많이 듣는 말이 '기다려!'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간식을 앞에 두고 인내심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댕댕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테니스를 배우고 2년쯤 되었을 때, 테니스 유튜브를 보고 있다가 운동 간다며 뛰쳐나가는 나에게 딸들이 물었다.

 “엄마 이제 테니스 잘 치지? 선수된 거지? 새 학기 환경 조사서에 엄마 직업 쓰라고 했는데, 테니스 선수라고 써도 되지?”

 아이들이 나를 놀리려고 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난 풀이 죽었다.

 “아니, 나 우리 코트에서 아직 꼴찌인데...”

 딸들은 웃픈 표정으로 말했다.

 “꼴찌 하기엔 너무 많이 가고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테니스는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기술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오히려 테니스는 매력적이다. 난공불락의 이성(?) 같다고나 할까. 정복해 보고 싶지만 되지 않는다. 나는 안다. 이번 생에서는 힘들다는 것을...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나마 클럽에서 적응할 수 있었던 건 테니스 실력이 아니라 나의 다른 특기 때문이었다. 우리 클럽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월례대회를 하는데, 대회 후 다 같이 모여 회식을 한다. 회식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 법. 다행히 내 술 실력은 테니스 실력보다는 월등했다. 게임할 때는 눈길 한번 안 주시던 선배들이 술잔을 들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주신다. 감지덕지. 그럴 때마다 느린 발을 주셨으나 튼튼한 간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실력은 향상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테니스의 맛을 알아가던 내 운동 생활에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일어났다. A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30대 초반이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아이 만한 작고 마른 몸집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타고난 운동신경과 순발력은 가히 놀랄 만했다. 내가 2년 넘게 노력해서 터득한 것들을 6개월도 안 돼서 다 마스터하고 우리 코트의 뉴페이스로 급부상했다.

 나를 가르쳐 주셨던 K싸부님은 가르쳐주는 대로 쏙쏙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A를 보자 가르침에 열정이 마구 솟구쳐 오르셨는지 레슨에 더욱 진심을 다하셨다. 나도 아이들을 지도해 봐서 알지만 잘하는 아이를 가르칠 때는 힘이 들지 않는다. 가르쳐 준 대로 실력이 느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 짝이 없으며,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내가 레슨 받던 자리에 언제부터인가 A가 먼저 와 있었다.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고, 그러기도 싫었다. 어차피 돈 내고 받는 레슨이 아니라서 내 자리도 아니었지만, 손에 쥔 떡을 난데없이 빼앗긴 아이처럼 난 울고 싶어졌다. K싸부님은 나의 레슨을 다른 분에게 맡기셨다. 새로 레슨을 해주기로 하신 Y싸부님 또한 너무 실력 있고 좋으신 분이었지만 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더 이상 코트에 나가기가 싫었다. A만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여겨졌기에 그녀가 미웠다. 물론 젊은 후배가 나보다 빨리 배우고 실력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더 속상했던 건 기울어진 천칭 위에 우리 둘을 올려놓고 아무렇지 않게 저울질을 해대는 몇몇 선배들의 배려심 없는 말과 행동들 때문이었다. 보통 수준에 맞춰 혼복(혼합복식)으로 경기를 하다 보면 병아리인 나와 A는 항상 상대편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A의 발리 샷에 내가 속수무책 당할 때, 구경하는 선배들의 ‘이젠 oo 이는 A에게 안되네’, 또는 ‘ 젊은 애를 어찌 이겨’하는 소리들을 들을 때면 라켓을 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억울했다. 띠동갑도 넘게 차이나는 나이는 둘째 치더라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자유로운 시간에 운동을 마음껏 하는 사람과(A는 취준생),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밥을 해주고 일도 해야 되는 내 상황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소리쳐봤자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 '나도 그 나이 때 배웠으면 지금보다 훨씬 잘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건강하려고 시작한 운동이 오히려 내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런 되지도 않는 열등감이나 질투심이 한차례 지나가고 한 후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내 졸렬한 마음, 그것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 어른들은 없고 다 주름진 아이들만 존재할 뿐이라고... 열 살도 넘게 차이 나는 어린 동생에게 감정의 날을 세워 미워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렇게 갈등과 방황이 중첩된 날들이 일 년쯤 지났을 때, 어느 날 A가 개인사정으로 얼마 동안 테니스를 쉰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클럽 단톡방을 나갔다. 처음엔 눈엣가시가 사라진 것처럼 시원했다.(그때만 해도 나는 여전히 이랬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코트에 들어설 때마다 한구석이 허전했다. 게임을 할 때도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들하고만 하니 재미가 없었고, 레슨을 받을 때도 예전처럼 열심히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다. A에게 뒤처지기 싫어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는데, 갑자기 도달해야 할 목표가 상실되었다고나 할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보려고 하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것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타인들의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내 이기적인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평안을 되찾았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거기에서 유능함을 인정받고,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행복한 인간의 조건이라고. 언젠가부터 그 사실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좋아서 테니스를 시작했고, 거기서 한 단계씩 성장해 가는 성취감을 맛보았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은 그들이 내 인간관계의 가장 큰 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들과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운동하는 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이다.



 한 달쯤 뒤 A와 나는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A는 취준생으로 나이 많은 선배들이 가득한 코트에서 막둥이로 겪었던 마음의 부담감을 토로했고, 나도 그동안 내 마음의 갈등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해했으며, 보듬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은 A와 너무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간 한 번은 더 나의 진심을 온전히 전해주고 싶다.      


 “A야, 언니가 되어서 너를 따뜻하게 감싸 주지 못하고 질투하고 미워했던 마음을 품었던 것 용서해 주렴.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늙은이일지라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젊은이를 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래. 어쩌면 그것이 젊음이 가진 특권이잖니. 그러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렴. 너 때문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오히려 네 덕분에 나 역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 그래도 또 시합에서 네트 앞에 톡 떨어뜨리는 너의 백발리에 당할 때면 순간 열받긴 하겠지?(인간이니까) 그래도 언니랑 같이 운동해 줄 거지? 항상 함께 게임해 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로의 위닝샷을 받아주는 사이가 되자.”


 테니스는 어렵다. 그래서 재밌고 즐겁다.

 우리네 인생처럼...




(여덟 번째 에세이 끝)




- 웹진 <숨 빗소리> 9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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