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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영잉 Dec 22. 2023

넷플릭스 구독을 취소했다

편리하지 않은 제주 곽지 라이프


넷플릭스 구독을 취소했다. 이제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리즈가 없을뿐더러,

읽어야 할 책들을 뒤로한 채 시리즈 목록 안에서 갈팡질팡 하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OTT 구독 취소 인증 게시물이 유행이라던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무튼.



'아침 7시 반'에 '늦잠'을 잤다는 작가님의 메시지가 날아온 후, 어젯밤에 미리 예고하신 아침 식사를 쟁반에 담아 본채로 넘어오셨다.

수제 요거트와 그레놀라.

이 요거트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 어느 가정집에서부터 숟가락에서 숟가락으로 전달되어, 제주 곽지에 다다른 다문화 요거트라 할 수 있다.

작가님이 직접 만든 구수한 그레놀라와 합이 아주 잘 맞았다. 게다가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몸값 비싼 탱글한 블루베리까지 얹어지니, 그 맛과 멋의 조합이 상당했다. 왠지 제주에서, 특히 작가님과 함께하는 제주 라이프는 늘 특별한 바이브가 있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우리 셋은 눈이 마주쳤다.

“영화 보러 갈까???!”


제주 곽지에서 차를 타고 나가면 있는 작은 영화관, 이름은 한림 작은 영화관이다. 참 알맞게 잘 지은 이름이다. 좌석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안에 앉은 관객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곳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제주스러운’ 문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험란한 길이었다. 우산 밑에서 자동차에 몸을 싣는 찰나의 순간에도 머리가 홀딱 젖었고, 건물로 뛰어들어가는 순간 고인 빗물이 첨벙! 발이 젖었다. 관객이 몇 없어 자율좌석이나 다름없는 상영관. 적당한 자리에 쪼르륵 앉아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서로의 감상과 성대모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목록을 손가락으로 슥슥 넘기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눌러보고는 이내 곧 다시 닫아버린다. 더 나은 것을 찾아 또 다시 흘러간다.

편리하지만 피로했다.


제주에서의 편리하지 않은 이 생활은 내게 활력을 줬다. 무언가에 지칠 때면 제주로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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