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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Oct 17. 2024

나와 대화하는 방법

나에 대해 알아가는 아침 일기 쓰기 

"엄마, 나 배고파."

아이의 성화에 밥 짓는 속도가 빨라진다. 보글보글 끓이는 된장찌개에 곱게 만 계란말이와 여러 밑반찬들을 차려낸 식탁은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 풍경의 클리셰가 아니던가. 그에 비하면 요리 실력이 한없이 부족하지만 한 시간 가까이 주방에 서서 아이가 좋아하는 우엉조림에 콩나물무침, 어묵탕을 열심히 요리한다. 


책도 읽어 주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식탁 위를 채운다. 다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며 거실에서 놀고 있는 남편과 아이의 모습에 문득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결혼 전부터 내가 꿈꿔오던 안정적이고 안락한 가정의 풍경이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안락한 가정의 모습에서 삐그덕 소리를 낸 건 나였다. 

단란하게 꾸려가던 가정 속에서 아내와 엄마로서의 나의 모습은 여기 있는데 아이는 커가면서 점차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 않아 지고 남편은 나와 동떨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여기 그대로 있는데..' 

그대로 남겨진 나도, 나와 떨어져 가는 아이와 남편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삐그덕 삐그덕 불협화음을 낸다. 불협화음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은 아주 오랜만에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주어진 하루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생각해 본다. 상담 일을 했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운동보다는 산책을 좋아하고, 서점이나 카페를 가는 걸 좋아했지.. 지금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이나 남편이 좋아하는 건 말할 수 있는데 그동안 나는 없고 엄마와 아내만 있었구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나를 데리고 온다. 혼자여서 외로웠겠다며 토닥이고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모두 나간 집 거실 테이블에 덩그러니 남아 노트를 펼쳤다. 내가 좋아했던 것, 싫어했던 것, 지금 나의 기분.. 나에 대해서만 적어본다. 나에 대해서는 대화나누기가 참 어렵다. 아이나 결혼생활에 대해서가 아니면 나눌 대화거리가 없다는 게 이토록 힘 빠지고 씁쓸한 일이었구나.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을 챙기며 살아가는 엄마들을 보면서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싶다. 


쭉 적어 내려 간 노트를 들여다보다 일단 예전에 좋아했던 것부터 아직도 좋아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에는 책을 읽고 적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직접 부딪치며 살아보기로 한다. 출산 전에 했던 상담 일을 하기를 원하나? 지금도 그림을 그리나? 산책만큼 좋아하는 운동, 수영이 생겼다. 서점이나 카페는 여전히 좋아. 잠시 상념에 빠졌다가 마음이 정돈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와 참 오랜만에 대화한 기분. 참 오래도 기다렸겠구나. 남이 아닌 내가 알아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을, 솔직하게 나에 대해 매일 들여다봐야지 다짐했다. 이후 매일 아침 일기를 쓰게 됐다. 잠들기 전 쓰는 글은 아쉬움, 후회가 묻어난다면 아침에 쓰는 일기에는 소망과 바람이 담겨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길 '내가' 원하는지,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하길 원하는지 차분하게 적어나간다. 아침 일기를 통해서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을 결정도 해보고 조급하게 남을 쫓아가는 하루를 살지 않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 대만족이다. 


육아하느라 자신보다 아이를 우선했던 아이 엄마라면, 아주 조금의 여유가 생긴 때가 왔다면, 자신과 대화하며 알아갈 수 있는 아침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엄마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나로 오롯이 살아가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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