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평 아파트에 5인 1묘. 우리 집은 높은 거주자밀도를 자랑한다. 나에게 ‘자기만의 방’ 따위는 없다. 거실에 소파 대신 놓인 책상이 나의 공간이며, 오디오북 작업을 위해서는 안방의 붙박이 화장대를 녹음실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정신없는 상황에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 있는 동안에도 고양이 주인님은 은근히 나를 산만하게 만든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환경 탓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다. 글줄이나 써본 경험이 얼마나 된다고, 나 따위가 이런 말을 하긴 멋쩍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러나 분명, 그냥 써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쓸 수밖에 없도록, 쓰게 되도록, 써지도록 자신을 변화시키고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국민 글쓰기 선생인 강원국 작가도 글을 쓰기 위한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고 했다.
벤저민 하디는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많은 작가들이 글이 써지는 공간이나 환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매일 쓰고 싶어서, 글이 써질 만한 조건들을 이것저것 시험해 봤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글은 어느 정도 압박이 있어야 써진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다음의 세 가지였다.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만든다. 당연하다. 집중하지 못하면 쓸 수 없다. 주변이 어수선하면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집에선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 높은 거주자밀도이고, 두 번째는 주부 겸직자에게 집은 가사노동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 자꾸만 할 일이 생각나서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주부가 아니더라도,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은 우리에게 압박이 되기 어렵다.
카페에서는 한결 낫다. 평소와 다른 새로운 환경이고 내 테이블 위에 올려진 물건들로만 단출하니 복잡할 것도 없다. 조금은 낯선 공간이 집중과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카페가 너무 시끄러우면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이어 플러그를 항상 휴대하는 편이다. 요즘 별다방은 어느 지점이나 대체로 시끄러워서 회피 대상이다. 고맙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가 좀 있다. 가끔은 일부러 5분 정도 차를 몰고 가 한강 코앞에 있는 카페에서 딱 2시간 쓰고 돌아오기도 한다. 제법 괜찮다.
타이핑 소리가 다른 이용자들에게 방해가 되므로 일반 도서관은 좋지 않고, 스터디 카페는 경우에 따라 괜찮다. 노트북 이용실이 따로 설치되어 있거나, 음료를 위한 카페공간에서 타이핑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비용이 좀 들지만 스터디 카페도 추천하고 싶다. 나는 100시간권을 구매해 사무실 삼아 이용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에 딸린 북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책상 공간이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하면 집중에 큰 방해가 된다. 시험 기간에 자꾸만 책상 정리를 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공부를 회피하려는 의도뿐인 것은 아니다. 단정히 정돈되어 있고, 적막보다는 백색소음 정도 있는 공간이 좋다. 경험상 그게 집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글감이 있어야 쓴다. 쓸 게 없다고, 뭔 글을 그렇게 자주 쓸 수 있냐고 묻지만, 글감은 세상천지에, 하루 종일 널려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애써 찾지 않아도 글감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문제는 떠오른 영감, 글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생각난 것을 ‘나중에 써야지’하고 지나치면 정말 그냥 지나치게 된다.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짧게라도 메모하지 않으면 순간의 아이디어는 날아간다. 키워드 혹은 제목만 쓰거나 글의 핵심만이라도 써 둔다. 재치 있는 제목이 떠올랐다면 더더욱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제목만 봐서는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재치 있는 제목이라는 게 본문 내용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반드시 한두 문장이라도, 쓸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써놓는 게 좋다. 지금 이 글도 다른 글을 쓰다 아이디어가 ‘갑툭튀’해서 기록해 둔 것이다.
그럼 어디에 기록할까? 평소 글 쓰는 공간/수단에 써두면 가장 좋은 것 같다. v0.1의 초안으로. 나는 노트북 한글 프로그램을 활용해 적합한 폴더에 하나의 문서 파일을 생성해 둔다. 급할 때는 휴대전화의 메모장이나 메모 위젯, 카톡 나에게 메시지 등 늘 가까이에 있어서 가장 빠르게 기록할 수 있는 수단에 후다닥 정리한다. 단,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면 곤란하다. 짧게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 머릿속에도 기억 저장이 되긴 하지만(써놓는 것과 아닌 것은 기억력에 차이가 있다), 이것도 한계가 있으니 한 곳에 써두어서 실제로 필요할 때 즉각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기록해 둔 글감이 너무 많아지면 의외로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써둔 지 오래된 주제는 감이 떨어지고 열정도 식어 사용하지 않게 되고, 글감 목록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오히려 그것에 압도되어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 글감을 쌓아두기만 하지 말고 빼서 활용해야 한다. ‘언젠가 쓸 거니까’라는 생각에 마치 돈이라도 모으듯이 차곡차곡 모아두기만 하면 글감도 인플레이션을 맞는다. 결국 가치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글쓰기를 포기하는 파산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사용한 글감은 목록/기록에서 지우고, 마음이 변해서(가끔 밤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기 마련) 써먹을 수 없는 글감도 결정 즉시 지우는 식으로, 목록을 수시로 정리해야 한다. 정리하지 않으면 활용하지 않게 된다. 나는 가끔 대중교통 이용할 때 책을 보기 곤란한 상황이라면 글감 목록을 보면서 짬짬이 정리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카페 글쓰기’는 시간의 압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커피 한 잔에 최대 2시간만 신세 지는 것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더 몰아치게 되니 밀도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노트북 충전 케이블을 집에 두고 카페에 가서,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만 쓰고 온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시간으로 나를 압박하는 진정한 방법은 우선 타이머 활용이다. 대단히 유용하다. 뽀모도로로 해도 좋지만 25분 쓰고 5분 쉬는 것은 나에겐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30분 맞추고 쓴다. 30분만 써야지, 혹은 30분 안에 마쳐야지, 하는 마음으로 쓰는 것. 물론 그 30분 타이머를 몇 바퀴 돌리지만 말이다. 타이머가 있고 없고는 집중력과 효율성에 차이가 크다. 고3 딸내미에게도 추천했는데, 집중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아날로그 구글 타이머가 좋지만 번거로울 때가 있다. 장소를 옮길 때 일일이 들고 다녔더니 고장률도 높고 부피가 커서 불편하고 무엇보다 소리로 알림을 해주면 공용공간에서는 민폐가 되기 때문이다. 무음은 그냥 무음일 뿐이라 알림이 되지 않는다. 무음 모드에서는 불빛을 살짝 깜빡여주면 좋겠지만, 이 또한 도서관 같은 경건한 곳에서는 옆 사람에게 거슬리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아쉬운 대로 또 디지털이다. 윈도우의 ‘시계’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되는데, 남은 시간이 숫자가 아닌 이미지로 표시될 수 있도록 설정해 두면 디지털을 아날로그처럼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마감 활용이다. 이 역시 대단히 유용하다. 최근에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를 읽었다. 소설이지만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작품 속 슬아는 ‘매일’ 마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라면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지만, 좌우지간 아시다시피 마감이 다가오면 마치 초능력이라도 발휘되는 듯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학창 시절에 시험 시작 전 10분 쉬는 시간 동안 교과서를 휘리릭 볼 때 중요한 것들이 눈에 탁탁 들어오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만 하는 시간에는 더욱 몰입이 잘 되고 그만큼 성과도 좋다.
마감이 없으면 강제성이 없기에 성과도 없다. 그래서 내가 브런치북 연재를 하는 거다. 사실 초반 몇 주 동안은 연재일을 따박따박 지켰으나, 연재를 여러 개로 늘리고 보니 삶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브런치는 자꾸 글 쓰라고 독촉하고, 연재일 전에 독촉하고, 연재일 놓쳐도 잔소리하더라. 고맙게 생각하자.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 역으로 생각해서 마감이나 시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초집중할 때의 그 몰입력을 평소에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폭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근근이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나에게는 여전히, 글쓰기란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그럴듯하다.
스트레스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디스트레스(Distress)와 유스트레스(Eustress)가 그것이다. 디스트레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통이라는 부정적 측면의 스트레스다. 유스트레스는 보통 혹은 정상 범주의 스트레스로,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 된다.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해야 할 일이 없고 그래서 딱히 일어날 이유가 없다면, 그것이 일상적이라면 삶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유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내일도 글을 쓰도록 하자. 나에게 하는 말이다.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글 쓰는 삶’을 이어가시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로 꿀팁을 나눠 주시면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