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평화롭지만, 평화로워야 쓸 수 있다

by 낭랑한 마들렌

맘만 먹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나는 글을 쓸 수 있겠다. 자고 일어나서 쓰고, 밥 먹고 또 쓰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햇살이 책상 위에 내려앉는 시간부터, 밤이 깊어 모두 잠든 시간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 글감은 아직도 무궁할 정도로 많으니까 말이다. 시간과 공간이 허락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맘 먹는 일’이다.

마치 다이어트처럼,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맘 먹는 일이다. 결심은 늘 단단하게 시작하지만, 생활은 그보다 더 단단하게 나를 붙든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핑곗거리는 글감만큼이나 무궁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쓸 이야기는 넘치는데 쓸 마음은 좀처럼 차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핑계들 중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글을 쓰기로, 많이 쓰기로 마음을 먹으려면 내면이 평화로워야 했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어야 했다. 걱정거리가 없어야 했다. 할 일 많고 급한 일 있고 속 시끄러운 일 있다면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앉아 있’을 수 없더라.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자꾸만 다른 데로 달아난다. 문장 하나를 붙들고 있어도, 생각은 계산기처럼 돌아가며 오늘의 일들을 헤아린다.



결국 글쓰기는 내면의 평화임을 깨닫는다.

뭐, 전업작가라면 그 모든 것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든 술술 써 내려갈지 모르겠다. 마감이 곧 생계인 사람들은 불안과 분주함 속에서도 문장을 길어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범하다 못해 어쭙잖은 나 같은 사람은 다르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내보여야 하는 일이므로, 내적 평온함이 흔들릴 때는 힘들다. 마음이 잔잔해야 비로소 내 안의 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글쓰기와 내면의 평화는 상호 의존 관계다.

쓰면 평화롭지만 평화로워야 쓸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벽한 고요를 기다리며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안다. 완전한 평화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니 결국은, 조금 어수선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로라도 한 줄을 써 내려가는 수밖에. 완벽히 정돈된 마음을 기다리기보다, 쓰면서 정돈되기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한 줄이 또 다른 평화를 데려올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평화가, 다시 다음 문장을 부를지도 모르니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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