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라떼’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꼰대’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때때로 그 안에서 신선한 통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를 과거와 비교해 단순히 폄하하거나,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시대가 달라졌다” 혹은 “시대의 흐름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라떼와 지금이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AI 시대다. 나는 한 번도 AI로 글을 써본 적이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며,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온 외골수다. AI는 제한적으로만 사용했으면 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다. 그동안은 자료 조사에만 몇 번 활용해 본 정도였다. 일일이 찾지 않아도 되니 작업 시간이 말도 못 하게 단축되었고, 시간뿐 아니라 조사 결과 역시 내가 직접 했을 때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제 AI도 아니라는 듯한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치고 AI를 쓰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나만 안 쓰면 바보가 되겠구나—뒤늦게야 머리에서 가슴으로 깨달음이 도착했다. 결국 한번 배워 보기로 결심했고, 실제 활용 역량은 물론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신청해 VOD 강의를 듣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늘 늦되는 편이었는데, 결국 이제야 AI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AI가 나날이 발전해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그 ‘정도’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었다. 남들은 이미 다 겪었을 일을 이제야 혼자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AI의 글쓰기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아직 커리큘럼 초반이라 글쓰기 외의 다른 기능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우선 AI를 활용한 글쓰기는 안 되는 것이 없는 듯하다. 그 실력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는 작가님들 역시 이미 잘 알고 계실 터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획과 구성, 집필은 물론 교정·교열과 윤문까지 거뜬하다. 거친 표현은 부드럽게, 투박한 문장은 품격 있게 다듬어 주니, 역시 안 쓰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글의 분량을 줄이거나 늘리는 일, 독해 난이도 조절까지 가능하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글의 톤까지 바꿔 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전반적인 분위기만 주문해도 되고, 브런치나 블로그 형식, 부드러운 에세이 톤, 설명문에 가까운 톤, 말로 설명하기 좋은 문체, 심지어 낭독을 위한 오디오북 톤까지 가능하다. 그걸로 해 달라고 해 보았더니, 내 목소리에 맞춘 ‘저음 안정형’으로도 조정해 줄 수 있단다. 글인데도 소리에 맞출 수 있다니! 낭독을 업으로 삼고, 또 가르치고 있는 나로서는 ‘문장 끝에서 자연스럽게 내려앉는 낭독’ 운운하는 대목에서 상상력을 완전히 넘어서는 경험을 했다. 글쓰기에 관한 한, AI는 거의 전지전능해 보인다. 내가 아직 순진한 걸까. 설마 나만 놀라는 것은 아닐 테다.
AI 글쓰기의 만능성에 대한 충격이 스쳐 지나간 뒤, 곧 혼란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만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한 단어 한 단어를 써 온 것일까. 그래서 내 글이 남들에 비해 형편없었던 것일까. 뭐, 이런 건 이제 와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는 내 신조 중 하나니까.
그러나 질문은 다시 피어올랐다. 그동안 내가 즐겨 읽던 글들 역시 AI의 도움을 받은 결과였을까, 아니면 일정 부분만 보조를 받았던 것일까. 혹은 애초에 AI가 주체였던 건 아닐까. 만약 내가 훌륭하다고 여겼던 글들이 사람이 아니라 AI가 쓴 것이라면, 나는 허깨비를 추앙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글쓰기에 관한 한 모든 것을 해내는 AI. 창의적 글쓰기까지 가능해 전자책을 쓰는 사람도 많다 하고, ‘OOOO로 웹소설을 써서 연재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렇게 쉽게 결과물을 낼 수 있으니, AI를 이용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책을 만들어 내는 이른바 ‘딸깍 출판’이 출판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릴 적부터 ‘죽기 전에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기’가 소원 중 하나였던 나로서는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이렇게 쉽게 글을 쓸 수 있다면, 매일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무겁게 다짐하며 애써 고생할 필요는 없는 걸까. 일상에서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미친 듯이 메모하고, 몇 시간씩 노트북 앞에 앉아 타이핑해 겨우 초고를 완성하고, 볼품없는 글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고치고 또 고치는 나는 헛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AI가 다 해줄 수 있는데 인간이 직접 할 필요가 있을까. 나의 지성과 필력으로는 AI의 발꿈치조차 따라가지 못할 텐데, 과연 나는 글을 계속 써야 하는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밀려온 충격의 물결은 ‘과연 우리는 작가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설령 전반적인 글쓰기는 직접 하고, 기획·구성·교정·교열·윤문 정도만 ‘AI의 도움’을 받는 수준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온전히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그 모든 과정 역시 우리는 글쓰기라고 부르지 않는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며칠 전 나 역시 실제로 AI의 도움을 받아 보았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브런치로 옮기고 싶었는데, 아시다시피 두 플랫폼은 요구하는 글의 톤이 다르다. 일정이 바빠 블로그 글을 브런치 톤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더니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몇 초 만에 결과가 나왔고, 몇 군데만 손본 뒤 곧바로 업로드할 수 있었다. 실로 신세계였다.
그러나 그렇게 올린 글을 마주한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다. 온전히 나의 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애착도 덜했다. 과연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가.
2025년, 뉴질랜드의 오컴 뉴질랜드 북 어워즈(Ockham New Zealand Book Awards)는 AI를 활용한 작품을 후보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책의 안팎 모두에 AI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화된 규정을 적용했는데, 책 표지가 AI로 제작된 두 작품이 후보에서 제외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두 작가 모두 해당 이미지가 AI 제작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이에 대한 출판계의 반발로 논의 끝에 후보 자격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없는 AI 산출물은 저작권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여전히 AI 활용을 둘러싼 의견은 분분하다. 어디까지를 용인할 수 있는가, 어느 선까지가 ‘도움’이고 어디부터가 ‘대체’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의 생각은 물론 사회적 합의 역시 아직 명확하지 않다.
며칠 전 다보스 포럼에서 일론 머스크는 “5년 내 AI가 인류 지능을 초월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글쎄、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의 상상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혼자 고고하게 ‘순수한 나만의 글’을 고집할 때는 분명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고, AI를 활용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중이다. 여기서 라떼를 운운해 봐야 구석기시대인 취급을 받을 뿐일 테니까.
결국 ‘AI를 얼마나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어느 선까지가 도움이고, 어느 정도부터가 윤리적인 문제로 넘어가는지에 대한 판단은 우리 각자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