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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May 17. 2023

사과

필요할 때 빼먹지 말고! 정성껏 제대로!

매일 아침 6시부터 7시까지 낭독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음 성장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는 <소울그로우> 모임이 있었어요.

[인생의 태도]를 읽고 바로 존경해 버린 웨인 다이어 선생님의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라는,

감동적이면서도 당연한 말이 제목으로 되어 있는 좋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나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며 살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읽고 있는데요, 

오늘 함께 읽은 부분 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어요.



화를 낼 필요가 있다면 내되
분노에 사로잡히지는 마라.




저는 이 말의 뜻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내 마음, 다른 사람 마음 상해가며 배운 것을 책에서 만나니 좋더군요.







몇 해 전 이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물품을 주문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배송이 되지 않았습니다.

판매자 문의 게시판에 글을 남겼지만 뾰족한 답이 없더니,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최종 답변을 받았습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현재 상품이 품절되어 배송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결제하신 금액은 환불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뭐, 상황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할 말이 없지는 않았겠죠.

부당한 일을 겪었다는 생각에 저는 해당 플랫폼 고객센터에 항의했고, 상담사 선에서 해결되지 않아 매니저를 연결해 달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당해내기 힘듭니다.

첫째, 둘째 조목조목 따져가며 논리적이고 분명하게 말을 해대니 좀처럼 반박하기 어렵죠.

상담사는 방법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임기응변의 내공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약이 오른 저는 '분노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어떻게 해서든 상품을 구해 배송해 달라, 환불 처리를 원하지 않는다, 상품을 보내라'라며 진상을 부리게 된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니 역시 부끄럽네요.


결론적으로 제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물건 배송요?

그건 처음부터 당연히 안 되는 거였고요.


그럼 저는 뭘 원했을까요?





저는 그저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던 겁니다.


해당 판매자의 대처는 지금 생각해도 비상식적이었습니다.

같거나 유사한 상품을 유통하는 수많은 판매자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시대 흐름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기본 예의와 도리 측면에서 생각해도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 것이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심 어린 사과는 모든 것을 덮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한 사과를 받으면 감정이 해소되고, 감정이 해소되면 문제는 사실상 사라집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도 없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할 수도 없는 상황 즉, '실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니까요.






꽤나 오래전.. 한 16년쯤 전의 일입니다.

제가 운전 미숙으로 실수를 해 다른 운전자를 크게 놀라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지요.


상대 운전자는 차를 정차하고는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어왔습니다. 분명 화가 난 것이지요. 저한테 마구 큰소리치며 따지고 야단을 치겠지요.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하고선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좌우지간 이 일은 내가 잘못한 것이니 책임지고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저는 차에서 내려 그분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저는 첫아이를 임신해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상대 운전자는 남성이었고 얼굴이 벌게져서 당장이라도 최소 삿대질은 할 기세였습니다. 그분과 대화가 가능할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전에 저는 공손히, 지극히 예의 바르게 배꼽인사를 하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운전이 미숙해서 실수했다, 시야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차를 출발시켰다, 얼마나 놀라셨느냐, 사고 날 뻔했으니 화도 내실 만하다, 앞으로는 운전할 때 각별히 주의하겠다, 등등 묻지도 않은 말들을 해가며 거듭 사과를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대 운전자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겠지요. 그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손을 허리에 댔다가 뒤통수에 댔다가 하며 한동안 어쩔 줄 모르다가 그냥 차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저도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잠시 후 씩 웃을 수 있었지요. 모르긴 몰라도 그분 역시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라며 가족에게 덤덤히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진심 어린 사과는 모든 것을 덮습니다.

잘못했으면 미안해하는 것이 당연하고, 미안하다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기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지요.

'상대방이 원하는 사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판매자처럼 '고객님, 죄송합니다.' 정도는 고객이 원하는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상대 운전자에게 지나치게 굴욕적인 사과를 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못은 제가 저질렀으므로 사과하는 것은 당연했으며 그것은 상대방의 감정 해소가 목적이었으니까요.

실수한 주제에 괜히 뻗대다가 감정싸움, 몸싸움으로 확장시킬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충분한 사과는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중학생 딸내미도 좋은 책이라 뀌띔해주었던,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에 사과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관계가 삐걱거려 한동안 데면데면했던 선배가 어느 날 쭈뼛거리며 다가와 사과 한 알을 주고 가더랍니다.


남자들끼리의 세계에서는 그걸로 '충분한 사과'가 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으나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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