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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Jun 30. 2023

인사를 하면 어때요?

귀를 열고요


“oo야!”


그녀가 저만치 앞서 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소리쳐 부릅니다. 두 번째 불렀을 때에야 아이는 돌아봅니다. 딸인가 봐요.


“너 어디가?”

“응?”

“너 어디 가냐고!”

“집.”

"뭐?"

“집!”

“그런데 왜 거기서 나와?”

"......"


거리가 워낙 멀어서 서로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결국 가까이 다가선 다음에야 원활하게 들리는데요, 원활한 소통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집으로 오기에는 학교의 후문이 가까운데 왜 정문으로 돌아서 오느냐, 엄마가 후문에서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아느냐, 한참만에 네가 정문으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 정문까지 갔다 오는 길이다, 등등 일방적인 말을 쏟아내는군요. 결국 다시 묻습니다. 왜 후문으로 나왔느냐고요.


이제 초등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는 예의 그 대답을 합니다. "그냥."이라고요. 어린아이들은 언어 표현력이 아직 충분치 못해 '그냥' 혹은 '모르겠다' 등의 대답을 많이 하지요. 그러나 엄마는 또, 무슨 그냥이냐며 다그칩니다. 엄마가 없으면 혼자 집으로 오라고 한 거지, 왜 후문으로 안 오고 정문으로 나와서 엄마를 이렇게 기다리게 했느냐, 블라블라블라......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자꾸만 조금만 입술로 같은 말을 하는데, 엄마의 귀는 닫혀있습니다.



기다려도 네가 나오지 않아 걱정했다, 혹시 너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엄마는 겁났다, 등의 자기감정 표현이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지만, 사실 그보다는 '인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녀들을 만나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하시나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 처음 대면했을 때, 학교나 직장에 다녀와 다시 만났을 때, 또 밤에 잠자러 들어가기 직전에 어떤 말을 하세요?



인사를 하면 어때요?



"잘 잤어?" 하는 아침 인사, 

"잘 자."라는 밤 인사,

"잘 다녀와. 이따 만나." 그리고 "잘 다녀왔어? 오늘도 수고했네."라는 반가운 인사. 하고 싶은 온갖 잔소리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이는 알지도 못하는 어른에게 인사하라고 강요하는데 정작 엄마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나요?



저희 집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첫 대면하면 오른손을 번쩍 들고 "음모ㄹ닝!"(실제 영어 대화에서 '굿'은 약하게 들리잖아요.ㅎㅎ), 밤에 자기 전에는 서로 살짝 안고 등을 토닥이며 "잘 자. 사랑해. 뽀뽀쪽!"하며 서로의 뺨에 뽀뽀를 해줍니다.


삼 남매 고객님들 출, 퇴근하실 때는요, 허리를 90도로 꺾어 배꼽인사를 합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와. 재밌게 하고 와. 잘 다녀와. 이따 만나요. 사랑해. 뽀뽀 쪽. 잘 지내. 잘 다녀와. 행복해야 해."라며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혹은 계단으로 몇 개 층을 내려갈 때까지 계속 말해줍니다. 세 아이가 따로따로 등교하니 세 번 합니다. 아이들은 "엄마, 이웃들한테 부끄러워요!" 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눈치입니다. 이 집 엄마, 좀 푼수같죠. 집에 돌아왔을 때-제가 집에 없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역시 배꼽인사로 맞이합니다. (TMI; 남편도 마찬가지, 배꼽인사로 보내고 맞이합니다.)


(저도 엄마로 살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어두운 터널을 경험한 뒤에야 이런 것들을 하게 되었으니 자랑이라 여기지는 말아 주세요. 나름대로 고충이 많았답니다.)



이렇게 인사부터 하니 아이들을 대하는 저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냥 인사하는 건데 얼굴 찡그릴 이유 있나요? '어이~ 안녕?' 하는 분위기로, 그냥 인사하는 거죠. 표정과 말이 이렇게 되니 아이들과의 관계가 말랑해졌습니다. 분위기 훈훈하니 좋은데 갑자기 쓴소리를 해대기 멋쩍으니 그런 말은 잠시 미루게 되더군요. 미루다 보면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거나 잊어버리기도 하고, 꼭 해야 하는 잔소리라면 가급적 아름답게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어떨까요.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엄마가 불편하지 않으니 하루 지낸 이야기도 슬금슬금 꺼냅니다. 사춘기 고객님들도 입 열게 만드는 것이네요. 인사가 그렇게 중요하더군요.



앞의 그 젊은 어머니도 그렇게 하시면 좋겠다고 주제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여기서 만났네! 학교 잘 다녀왔어?"하고 인사부터 하고 후문이든 정문이든 이야기를 꺼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안전, 당연히 중요하고 엄마가 아이를 기다리다 불안하고 걱정되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합니다. 몇 년 지나면 부모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시기가 올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알지도 못하는 어른에게 인사하라고 강요하는데 정작 엄마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나요?






아이 키우기 참 힘들죠? 초 극한직업이 바로 부모잖아요. 그래도 좀 더 노력해 주세요. 노력하지 않고 그냥 되는 일이 있나요.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잖아요. 내 아이, 네 아이 구별 말고 함께 잘 키워나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콧수염 나는 아들 다시 좀 귀엽게 만드는 비방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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