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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Jun 07. 2022

사춘기의 부모는 처음이라 1

오늘도 나에게 말해준다. 괜찮다고, 그냥 괜찮다고...

연휴가 끝난 화요일 오전, 온라인 강의 중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중학교 2학년생인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십니다. 벌써 눈치를 챕니다.


"어머니, 아이가 조퇴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오늘의 사유는 생리통입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두통이었고요.

오늘 아침 등교하면서 '조퇴하고 싶다'라고 혼잣말처럼 읊조리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남자 선생님께 생리통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하리라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갑니다.


조기 귀가하신 2번 고객님께서는 유튜브 영상들을 즐기십니다.

유일한 사교육인 피아노 레슨과 태권도 수련도 무단결석하시며, 닫힌 문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시네요.

이건 뭐, 땡잡은 날 아닌가요.




큰아이는 과묵한 아들입니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인정받고 칭찬만 듣고 싶으신 분이지요.

자기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자부심이 커져, 제가 작은 것이라도 조언 좀 할라치면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순했던 냥이가 감히 주인 행세를 하려는 집사에게 발톱을 드러내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그러한 분이지만 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죠. 오며 가며 책상의 틈새로 보아하니 게임도 참 다양하게 즐기십디다. 그러면서도 제가 밖에 있을 때 전화를 하면 '거의' 받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는 휴대폰을 멀리하는 모범생이라는 듯이.


오늘도 여전히 책상에 문제집을 펴놓고 열공자 코스프레를 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은근한 게임 삼매경에 빠지셨습니다. 감히 '웬 게임을 그리 오래 하냐' 아뢰었다가는 어떤 사태를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어미는 그저 눈을 감을 뿐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인 막내는 자타공인 귀염둥이요, 애교쟁이입니다. 딸은 아니지만 살가운 아이'였죠'. 그리고 태생이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너무나 자유로우셔서 인간계의 질서와 규칙은 도무지 접수되지 않는 분입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당연히 양상이 심화되지요. 이제는 무슨 말씀을 올려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십니다.


그런 그분은 또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적이신지, 하교 후 바로 귀가하는 법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동네 양아치', '건달패 두목' 정도 되리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집으로 오기 전에 친구들과 놀게 되면 반드시 엄마께 허락을 받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씀드려도 그분은 늘 '잊으'십니다. 그럼 카톡으로 '통보'라도 하시라고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급기야는 아침마다 여쭙고 있습니다.


"오늘은 몇 시에 올 거야?"


어김없이 6시라고 말합니다. 저녁 식사시간이거든요. 물론 지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6시가 넘어가고 형과 누나는 저녁을 먹는데도 오지 않아 어미 나부랭이가 감히 전화를 겁니다. '웬일로' 전화를 다 받으십니다? 

어디시냐 여쭈었더니,


"아참! 지금 갈게요!"


마치, 뭔가 깜빡 잊었다는 듯이,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미처 알지 못했다는 듯이, 엄마가 친히 전화를 다 하시다니 총알같이 집으로 튀어가겠다는 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뭐 그리 대수냐는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아들은 가방 없이 맨몸입니다.

네, 학교에 가방을 두고 온 것이지요.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를 사물함에 다 두고 다니더군요. 제 막내처럼 숙제도 얼렁뚱땅 해치우는 고객님의 경우는 가방 속에 놀이를 위한 도구들뿐인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방을 학교에 두고 다닌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선생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셨고 실제로 가방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데 굳이 아침, 저녁으로 메고 다니며 놀이에 방해받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에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사춘기 삼 남매의 엄마는 이러고 삽니다.

오래전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맡았을 적의, 한 권사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자식을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인생에서는 겪어봐야만 아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모'라는 극한 직업과 '사춘기의 부모'라는 초극한 직업이 아닐까 합니다.


이 귀중한 사춘기 삼 남매 고객님들께서 저녁 식사를 하시는 동안 '한 말씀' 올릴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다시, '입 다물고 눈 감고 귀 막기'입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한 말씀 올렸다가 본전도 못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니까요.


고민이 많습니다.

부모로서 나의 태도가 바른 것인지, 사춘기 아이들을 이렇게 '내버려 두면서' 키우는 게 맞는 것인지... 방임과 방목 사이에서 갈등하곤 합니다. 지난주에는 딸아이를 데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왔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왔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해야 하는지, 다 지나갈 일이니 그저 지켜보아 주는 것이 최선인지, 이 모든 게 나의 유난스러움인지 혹은 무심함인지...


오늘도 모범답안을 갈구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말해 봅니다.

괜찮다고, 그냥 이대로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 줍니다.

괜찮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말해 봅니다.

엄마인 내가 감정에 휘둘린다면 그것이 더 위험한 일이기에 우선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자식 흉보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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