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셋이라 다행입니다.
두 번 실망해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
세 아이는 모두 사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첫째와 막내인 아들들은 저와 큰 갈등 없이 지나가고 있는데, 둘째인 딸아이는 수월치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속마음을 곧잘 표현하던 딸은 사춘기가 되어 예민해지자 종종 불평하고 투덜대며 마음속에 이는 생각과 감정도 툭툭 내뱉어 가족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었지요. 딸을 데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척추 교정 치료에 다녀오는 일은 저의 일상에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병원에서 슬슬 발동을 거는 그녀입니다. 무엇이 또 불만스러웠는지, 저에게 짜증을 내며 성질껏 행동하더군요. 저라고 대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은, 그래도 부모 된 마음으로 한 번 더 참아주고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말을 애써 삼킵니다. '그래, 내가 뭔가 심기 불편하게 한 일이 있겠지...'
이 와중에 막내는 또 어떤가요. 이 아이로 말할 것 같으면 태생이 자유로운 영혼이며 정적인 활동보다는 몸 쓰는 것을 선호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반복되는 연습을 하는 것을 가장 싫어라 하지요. 그래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다며 1인 시위를 합니다. 아빠, 그리고 원장 선생님과 의논해 볼 테니 일단 시간을 좀 달라고 했는데 그만 무단결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특유의 당당한 태도, 즉 '내가 가고 싶지 않아서 안 갔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하는 듯한 모습으로 과한 당당함을 보입니다.
아이고, 뒷골이야...
문득 큰아들을 보니 전에 없이 무진장 반갑습니다. 오돌토돌 여드름에 수염인 듯 수염 아닌 거무스름한 솜털 비슷한 것이 나 있는, 한창 아름답지 못한 사춘기 소년의 얼굴입니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네가 있었구나!'
두 번 속상해도 아직 한 번의 기회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물론 돌아가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내 아이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제 인생, 최고로 잘한 일 중 하나가 아이를 셋 낳은 것입니다. 둘만으로는 부족했을, 행복과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선물이 셋이나 되네요.
두 번 속상했던 오늘, 입 다물고 귀 닫고 여느 엄마들처럼 가사 노동에 집중해 봅니다. 그러고는 감정을 다스리고 해야 할 말을 했지요. 우선 딸아이에게는 속마음, 속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듣는 사람들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피아노 레슨 저항자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체르니 30은 집어치우고 실용음악으로 해도 좋다고, 무엇이 되었든 연주하고 싶은 곡만 골라서 배우고 연습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오케이지요.
두 번 속상했지만 세 번째 아이를 보고 마음 정화에 성공한 날입니다. 두 살 터울로 낳고 기르느라 육아의 터널은 멀고 험했지만, 아이 셋 낳기를 참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