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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Apr 15. 2023

모교로 돌아간다는 것

병아리 교수의 번역수업 일기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교수가 23세 대학생 때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후 23년 만에 모교 교수로 부임한 신문기사를 접하면서, 모교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했다. 물론 나의 스토리는 이지선 교수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다시 모교로 출근을 하게 된 입장에서 이지선 교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이지선 교수의 소식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의환향한 스토리로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모교에서 강의를 하라는 부름을 받아 첫 수업을 하러 간 날은 금의환향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날의 기분은 차분했고 긴장되었고, 무엇보다 숙연했다.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만화가 기안84가 농촌에 사는 고모네서 며칠을 보내는 장면이 나왔다. 농촌에서 소를 키우고 밭일을 도우며, 벼가 자라고, 그것을 소가 먹고, 그 먹은 것이 다시 밭의 거름으로 쓰이고, 거기서 다시 벼가 자라는 한 바퀴 순환이 경건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내가 학교 수업을 하며 느낀 숙연함이 바로 이 경건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닐 때는 학교에서 배움을 얻어서 사회에 나가 경제력과 사회적 인정을 쌓고 또 쌓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졸업한 지 12년 만에 학교에 돌아와서 그동안 내가 쌓은 것을 하나하나 학생들에게 내어줄수록, 내가 얻은 것은 다시 돌려주는 것이 순리라는 깨달음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모교 교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학교 캠퍼스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많다. 그 나무 그늘 밑에서 숙제도 하고 김밥도 먹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수다도 참 많이 떨었다. 학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나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는 지식을 주었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좋은 친구들도 남겨주었다. 그러니 나에게 모교로 돌아가서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그 교정에서 자랄 또 하나의 나무를 위해 정성스럽게 거름을 주고 씨앗을 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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