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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Dec 04. 2023

쓰지 않는 것도 쓰는 것이다

<나의 두 번째 에세이에 들어갈 글>

 얼마 전, 내 마음속 글쓰기 선생님으로 모시는 은유 작가님의 북콘서트를 보러 충남 공주까지 다녀왔다. 내가 은유 작가님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청주에 사는 소설가 지망생 후배가 행사 신청 링크를 보내온 거다. 현재 매진이지만 새로고침을 하다 보면 자리가 날 수도 있다는 꿀팁과 함께. 간절함은 마지막 자리를 딱 내게 가져다주었다. 일주일간 하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마음을 안고 살다 여차여차 도착한 공주 궁월장여관. 외관은 수수하지만 내부는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모여 시를 읊던 동굴처럼 낭만적이고 예술적이었다. 은유 작가님과 그녀의 신간 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집인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를 꼭 닮은 공간이랄까.      

<궁월장 여관 전경>

  적당히 질서 정연하게 놓인 접이식 캠핑 의자들, 무대만 조명을 켜고 청중석은 컴컴하게 연출한 극장 같은 분위기, 순수함을 너머 날것 느낌의 그래피티, 그리고 록그룹 넬의 노래, <지구가 태양을 네 번>의 서글프고 몽환적인 사운드가 낮은 동굴 안을 뿌연 연기처럼 채우고 있었다. 솔직히 아주 조금 어지러웠다. 귓가에 드럼 비트보다 내 심장 박동 소리가 쿵쾅쿵쾅 더 크게 들려서.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열기였다. 어찌 됐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혀준 것도 소리였다. “저 고양이도 여기로 들어오고 싶은가 보네.” 작가님이 마이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언급하자 우리는 모두 웃었다. 내 긴장도 한결 풀렸다.   

<북콘서트장 내부 모습>

  자못 진지했던 편집자와 작가의 인터뷰식 대화가 끝나고 청중석으로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세 번째였던가. 얼떨결에 손을 번쩍 들었다. 같이 간 후배가 이런 기회가 또 어딨겠냐며 자꾸 손을 들라고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바람에 그렇게 하고 말았다. 사실 준비한 질문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기회가 내게 오니 요즘 나를 계속 괴롭히던 고민이 툭 튀어나왔다.      


  “책 한 권을 냈고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직장인이고 엄마다 보니 매일 몇 시간씩 쓰지도 않고(이것도 핑계지만) 뭔가가 차올라야 조금이라도 쓰는 성향이라 그냥 읽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작가의 길을 갈 수 있는지......”     

  곧이어 횡설수설한 질문에 촌철활인의 답이 돌아왔다.  

    

  “글을 쓰고 있지 않다고 해도 누군가와 공감하고 교감하고 있다면 그것이 쓰고 있는 거지요. 조바심을 버리고 삶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해요. 좋은 글을 쓰는 것이지 많은 글을 쓰는 게 아니죠. 쓰지 않는 것도 쓰는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내가 성장해 나가고 관계를 맺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이죠.”     

<은유 작가님>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마 눈에서는 하트가 뿅뿅 발사되고 있었을 거다. 글 쓰는 삶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주시지 않았나. 갑자기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린 것 같고 다시 잘 살아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사이다 같은 보약 한 사발을 쭉 들이킨 기분이랄까. 게다가 대단한 질문을 한 것도 아닌데 출판사에서 제작한 굿즈인 쨍한 블루 에코백과 작가님이 직접 주운 튤립 모양의 낙엽까지 덤으로 선물 받았으니 이만하면 공주까지 힘겹게 온 보람이 넘치고도 남지 않겠는가.

     

  수줍은 소녀의 마음으로 작가님의 사인까지 받고 나니 밤 9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후배는 청주로 돌아가고 나는 인적이 뜸해진 깜깜한 제민천 근처를 돌며 주린 배를 채울 식당을 찾다가 굳게 닫힌 문에 괜히 야박하다 탓을 했다. 배가 홀쭉하니 좀 전에 채운 순수한 영혼의 포만감은 온데간데없고 배고픔이라는 동물적 본능만 남은 거다. 결국 가장 인심 좋아 보이는 CU로 들어갔다. 우동이랑 소시지, 프링글스 오리지널을 사서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나를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하는 후배의 문자에는 노숙자가 된 기분이지만 신선한 경험이라며 쿨한 척 답을 보냈다. 사실 춥고 배고프고 무섭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밤의 제민천 광경>

  다행히 40분 정도 기다리자 남편이 왔다. 맙소사 그가 이토록 반가울 수도 있다니. 서울로 돌아가는 차편이 없어 남편이 2시간가량 운전해서 와주었다. 차에 탄 뒤 여보가 없어서  무서웠지만 지금은 덕분에 너무 행복하다며 귀여운 척 감사를 표했다. 조금씩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자 은유 작가님의 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줄리 필립스의 『나의 사랑스런 방해자』에서 조각가 에바 헤세가 작업에 대한 방해의 요인으로 언급한, 여자는 집안 청소부터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는 일, 아기를 갖는 일까지 모든 여성적 역할들로 인해 곁길로 새게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맞다. 가족을 위한 가사 노동자로서, 직장인으로서, 나 자신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위해서 여자의 하루는 참 바쁘게 흐른다. 그런데 여기에 글 쓰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더하려니 조바심이 드는 거다.   

  

   “요즘 뭐가 가장 큰 고민인 건데?” 운전하던 남편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글을 통 못 쓰고 있어.”

   “그게 다야? 그런데 다른 건 다 잘하고 있잖아.”

   “열심히 하곤 있지.”

   “그럼 글을 못 쓰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 글 좀 못 쓰고 있으면 어때. 괜찮아. 내 보기에 다 잘하고 있으니까      마음 편히 가져.”

   “고마워.”

     

  놀랍다. 남편은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마다 “밥 줘, 술안주 좀 줘, 옷 좀 찾아줘” 등 온갖 것으로 작업의 흐름을 깬 최고 방해자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물질적, 정신적 지원군으로 바뀐 거다. 하루하루를 잘 살고 그와 관계를 잘 맺어가니 쓰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쓸 힘의 원천인 위로와 용기를 그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래서 다짐해 본다. 쓰지 않더라도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는 삶을 살며 이야기 씨앗을 곳곳에 잘 묻어두자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글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몇 달 만에 쓰는 이 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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