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감탄을 위한 오래된 흔적
어제 완성한 작품 하나를 위해 종이 백장을 썼다.
나에게는 천지와도 같은 차이가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그 차이점을 물어보면 도리어 무엇이 다르냐고 되물어볼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전시장에서 빛을 받게 되어도,
10분 이상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게다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예술이라 감사하고,
그 시간 동안 욕심을 하나 둘 씩 내려놓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예술은 ‘순간’으로 보여 진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완성되어 보이는 그림과 몇 분도 안돼서 써내려가는 글씨.
길어봤자 6분에 끝맺음 되는 음악과 진정 순간의 예술로 치부되는 사진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지나간 수십 장의 종이와, 팔꿈치 아래 쉬이 지워지지 않는 먹의 흔적이 있는 것처럼,
래퍼에게는 수백 장의 공책에 쓰고 지워진 흔적이 있다.
미술가에게는 작업복에 알록달록한 흔적이 피어 있으며,
음악가에게는 수십 시간 반복된 녹음의 흔적이 있다.
또한 무용가에게는 온 몸에 피어난 흔적이 있으며,
배우에게는 너덜거리는 대본의 흔적이 있고,
사진가들에게는 수많은 셔터에 남아있는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의 결정체인 작품을 통하여 그들은 아파도 하고 기뻐도 한다.
작은 흔적들이 새겨질 때 마다 마주하게 된 예기치 못한 우연에 감동도 하고,
사람들의 한마디에 마음의 파도가 휘몰아친다.
이 세상에 오롯한 감탄사 하나를 피어내기 위해서
수많은 순간의 흔적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가엽고도 위대한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