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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중 이정화 Nov 17. 2019

한 줌의 우주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돌아가시다.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나의 미래에 나는 과연 나중에 무엇이 될까?     


붓을 잡은 지 스무 해가 된 어느 가을 날,

나는 직접 색다른 먹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자신의 색을 다 발산하지 못하고 요절한 예쁜 꽃잎과 잎들을 한데 모아서,

먹을 만드는 공정을 작게나마 거치는 실험을 해보았다.     

가을의 색들.



사실 이런 황당한 실험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서예가이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먹을 접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먹색이 검은색을 닮았지만 검은 색이 아닌 우주의 색, 현색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세상의 모든 색을 합하면 현색이 된다.’고 하신 말씀을

1차원적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열심히 무언가를 만드는 딸을 그저 말없이 빙그레 웃으시며 바라보셨다.

먹은 소나무와 향나무를 그을려서 만드는 것인데,

이 잎들도 과연 그 예쁜 먹빛을 낼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먹의 형태는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흙. 아니 꽃, 아니 나무.

결과적으로, 먹 만들기 실험은 참담히 실패했다. 그러나 그것은 최고의 성공이었다.

이유는 먹이 아닌 ‘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먹을 만들어서 작품을 하려고 했는데,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망했다는 생각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잠깐, 흙……? 흙이라니!’     


내가 모았던 그 예쁜 꽃들과 낙엽들이 한줌의 흙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흙에서 다시 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이었다.

흙은 원래 흙이 아니었고, 꽃과 나무 또한 원래 꽃과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나, 당연한 게 어디 있었을까.

영원한 게 어디 있었을까.     

흙으로 쓴 글씨, 뿌려진 우주.
菩提本無樹 보리나무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明鏡亦非臺 거울 또한 받침이 아니라네.
本來無一物 원래 하나의 물체도 없었는데
何處惹塵埃 어느 곳에 티끌이 일겠느냐.     


나무의 새치가 흙과 같은 색인 이유부터 낙엽들의 마지막 색이 온통 같은 이유,

소나무가 군자로서의 지조를 지킬 수 있던 이유까지 알게 되었다.   

  

봄을 지나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까지 사시사철 내내 소나무가 푸를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는 흙이 되어서 소나무를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다.

흙은 사실 처음부터 흙이 아니었기에,

소나무 주위의 누군가가 흙이 되어 소나무를 지켜준 덕이다.     


먹을 만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지우고, 흙이라고 불리는 자연한줌으로 글씨를 썼다.

주변에 흩뿌린 먹방울들은 아주 작은 원소, 그리고 우주를 표현했다.     


이 흙을 바라보면 그 해 가을날 만난 꽃과 나뭇잎이 내게 인사한다.

내가 그 나뭇잎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네가 저 꽃일 리가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니 너와 나는 하나가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저 흙에서 만날 테니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할 수 밖에.     


그들과 하나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과연 나는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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