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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미누나 Apr 17. 2020

사소하거나 혹은 가장 살뜰한 기록 #2

                                                                                                                                                                                                                                                                                                              

  

  재택이 다시 한번 연장되었다. 집에서의 나날은 조금은 평화롭고 어쩌면 단조롭다. 여유 시간이 많아지면서 계절을 스쳐가는 풍경에 시간을 조금 더 할애할 수 있게 되었고, 아침 과일은 꼭 챙겨 먹기, 하루를 마무리하는 운동은 빼먹지 말기와 같은 건강한 습관을 지키게 되었다. 쓰고 싶은 날씨와 느낌이 많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좀 더 기민하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마음에 여유가 있기에, 또 다른 것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매일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일을 바라거나 무얼 꼭 해야만 하지 않아도 좋은, 더없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안주하거나 도태되는 것이 아닌. 내가 스쳐가고 있는 지금 이 시기. 스물여섯을 알맞게 숙성시키고 있다. 

  하지만 바깥 상황과 맞물려 정기적으로 하던 오프라인 북클럽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자주 보던 언니, 오빠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나날이 조금은 그리워진다. 익숙하던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자각할 수 있는 것처럼. 북 모임에서 만난 그들은 다정하고 살뜰한 사람들이라, 나보다 조금 더 먼저 경험한 무언가를 아낌없이 내게 나누어주었다. 가령 나의 첫 디캔딩. 핼러윈 파티. 발레 공연, 클럽 등. 2019년엔 처음으로 해보는 경험이 많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은 더디고 쫄보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라 언니 오빠들과의 조우는 그래서 더욱 특별했는지 모른다. 다양한 사람을 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만큼 내가 커진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지호 작가의 시 '월요일'이 생각나는 날이다. 


처음이라고 하면 선생이 되어주니까/선생들이 늘어가고 미숙함을 이해해주었다/초범이라는 단어가 형량을 줄이는 것처럼/처녀작을 태워버리고/차기작을 발표한 작가가 있다면 그리워하겠지/형량은 늘어날 것이다/찾고 있던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나를 만든 건 처음이지요?/ 세상을 만든 것도 처음이지요?/ 그러면 봐줄 수도 있을 거 같다. -홍지호 '월요일'-


  어엿한 성인이 된 지 벌써 육 년이나 흘렀음에도. 언니 오빠들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늘 귀여워해 주고 사랑해주는. 관대한 눈빛과 토닥임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퍽 행복이다. 그들 속에서 나는 응원과 지지를 받고, 삶의 어떠한 신산함을 지워버릴 수 있다. 단순히 남과 여의 이성적 관계뿐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에서도 우리는 더없이 충만하며 아름답고  인자해진다. 벚꽃은 졌지만, 봄 냄새는 선연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는 애정과 배려의 마음으로 앞으로도 주욱 이어지겠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요즘, 멈춤의 시간은 그간 우리 곁을 지났던 익숙한 관계를 가장 해사하고 눈부신 것으로 만든다. 보지 못했던 그 시간만큼 발효된, 한층 더 구수해진 우리는 또 만났을 때. 그때만 풍길 수 있는 매력과 햇살을 지니고 있겠지. 보고 싶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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