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36. 토지 하브루타 20개월 대장정 완주하기
맨드라미가 아주 시들어버린 뜨락에 신병이 잦은 윤도집의 마누라가 배추시래기 빛 얼굴을 하고서 새빨간 김장 고추를 멍석에 펴 널고 있었다 p.29
Q1. '배추시래기 빛 얼굴 vs 새빨간 김장 고추'가 주는 이 극명한 대비는 뭘까?
이 질문은 토지메이트들이 하는 흔한 생각으로 ‘박경리 작가님이 그냥 쓰시진 않으셨을 텐데, 뭔가 의미가 있을 텐데... 뭐지?‘ 하는 식의 읽은 문장도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몽키몽키 매지익) 토지매직이다.
-p.45에서 답을 찾았다!
Q2. 윤도집의 마누라는 잦은 신병을 앓고 있는데, 왜 신내림을 받지 않을까?
-신병은 무엇일까?
<브런치 북 심리학자의 한국학> 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16 을 통해 알게 된 ‘신병’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흥미로웠다. 무당을 영적인 존재로만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일종의 ‘정신 승리자’ (무당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큰 상처를 딛고 일어나 분열된 자아를 통합한 존재입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비한 능력은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인간 정신의 한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선생 신병의 심리학적 이해 )로 더없이 인간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도집 마누라는 동학 별파 주요 간부의 아내로 신내림을 받기보다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어쩌면 신내림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석이에게 고봉밥을 주었던 따뜻한 마음의 윤도집 마누라. 늘 배추시래기 빛 얼굴일 수밖에 없는 말라비틀어진 삶의 윤기.
제 몸을 불사르거나 때리 부수는 최후수단을 언제 어느 시 그가 결행할지 모를 일이오 p.45
'제 몸을 불사르거나 때리부수는 최후수단'이라는 표현은 어쩐지 p.29의 첫 문장에서 보았던 ‘새빨간 김장 고추’를 떠올리게 했다. 환이의 무장투쟁노선과 연결된 ‘새빨간 고추’의 비유. 윤도집 마누라는 새빨간 고추를 멍석에 펴서 널고 있다. 생고추를 김장에 쓰려면 햇볕과 바람에 잘 말려야 하는데 윤도집과 혜관은 어떤 날씨가 되어 환이에게 불어줄까?
그리고 이것에는 우리, 이 피나게 줏어 모아 형체를 겨우 만들어 놓은 동학이 함께 불사루어지거나 때려 부숴질 위험이 있소 p.45
이 피나게 줏어 모아 형체를 겨우 만들어 놓은 ‘동학’은 바스라질 것만 같았던 윤도집 마누라의 ‘배추시래기 빛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동학은 ‘맨드라미가 아주 시들어버린 뜨락’, ‘배추시래기 빛 얼굴’로 상징되는 것 같다.
목적은 있으나 희미하고 과정만이 뚜렷한(p.45) ‘새빨간 김장 고추’를 잘 말려야 하는데 그것을 멍석에 너는 주체는 시들어버린 맨드라미와 참나무같이 뼈만 앙상한 마누라의 손등(p.29)이다. 그것을 번갈아 보며 우두커니 서있던 윤도집(p.29) 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혜관과 윤도집은 어떤 햇볕과 바람이 되어 환이의 메마른 정열에 윤기를 가져다줄까?
사실 ‘메마른 정열’이라는 표현이 너무 재미있었다. 도집 씨는 ‘김장 고추’ 환이가 그냥 자극적으로 스파이시한 게 아니라 뭔가 deep 한 매운맛의 고치까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얘는 이미 ‘메마른 정열 - 캡사이신 대마왕’ 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집 씨가 왜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었는지 알겠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