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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12. 2017

신병(神病)의 심리학적 이해

누가, 왜 무당이 되는가?

신병(神病)은 무당이 될 사람들이 무당이 되기 전에 앓는 병입니다. 사람이 달나라에 가는 시절에 귀신이 뭐고 무당이 뭐냐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지만, 신병 shin-byung이라는 우리말 그대로 임상심리학의 진단분류체계 DSM 4판에도 올라있는 한국의 문화적 증후군입니다.


귀신 및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분명히 경험되는 증상을 가진 정신적 현상이라는 뜻이죠. 오늘은 이 신병(shin-byung)과 무당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내 볼까 합니다. 

무당이 된 서양인, 안드레아 칼프

신병은 무당이 될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이유없이 몸이 떨리고 아프거나 시름시름 앓고, 헛것이 보이거나 환청을 듣기도 하지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지만 병원에 가도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병을 낫게 하려는 온갖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가고 병자가 최후에 찾아가는 곳은 무당입니다. 무당은 이러한 증상이 '신을 받아야'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신을 받는 댓가는 무당이 되는 것입니다. 신을 받아야 낫는 병, 신병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우선 무당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는데요. 무당의 정체에 대해서는 제 다른 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0)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무당은 신(神)과 인간을 중개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왜 병을 앓아야 하는 것일까요? 

한선생은 신병이 정신장애의 일종이라는 전제에서 신병을 앓는 이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예부터 무당은 대개 여성들이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남자 무당이 있는 곳도 있으나 대다수는 여성들이었고 이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여성들은 사회적 진출이 제한되어 있었고 배움에서도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생겨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요원했습니다. 게다가 남성위주의 사회적 질서에서 여성들은 지켜야 할 도리도 많았고 해서는 안될 금기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은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오래 지속되면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화병이죠. 신병과 마찬가지로 DSM-4에 올랐던 화병은 현재는 분노를 동반한 우울증의 일종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분노와 우울이 지속되면 신체적으로도 반응이 나타납니다. 면역체계가 망가지고 가슴이 뛰고 피가 몰리는 심혈관계의 증상이 뒤따르죠. 한(恨)은 이러한 화를 다스리기 위한 한국인들의 방어기제입니다. 분노와 억울을 초래한 원인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견딜 수 없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죠.


그러나 모든 화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삭일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한 사람의 정신에서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인간의 마음은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일부를 자신의 마음에서 분리해 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해리(dissociation)입니다.


해리는 기억상실증이나 다중성격장애 등의 예로 알려져 있지만, 초자연적 현상인 빙의(possession) 또한 해리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 설명방법이 없었던 시기, 한 사람에게 나타난 그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인격을 신이나 귀신이라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다중성격장애를 다룬 영화, 23 identity

이러한 관점에서 신병을 앓는 이에게 실린 신(神)은 해리된 정신의 일부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신(神)은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또한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많은 힘을 가지고 있죠. 배우지 못했고 의사표현을 억압당했던 이들의 정신이 반대방향으로 극대화되어 튀어나온 것이 신(神)이 아닐까요.


정신의 일부가 해리된 상태는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통합되어 있어야 할 정신이 말 그대로 분열된 것이죠. 환각과 환청, 현실 인식의 어려움.. 이는 조현병, 즉 과거에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던 정신장애의 전형적 증상입니다. 이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죠. 


무당은 해리된 정신으로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 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병을 앓는 이들은 내림굿을 통해 자신에게 들어온 신을 받아들여 무당이 되는데요. 이 과정은 해리된 정신이 어떻게 다시 통합되어 '병'을 낫게하고 환자의 정체성을 바꾸는지를 잘 설명합니다.


내림굿은 찾아온 신을 정식으로 받는 의식입니다. 즉, 해리된 정신을 분열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정신으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시 합쳐진다는 의미의 통합이 아니라 정신의 해리된 부분을 내 것으로 인정하고 그 존재와 함께 할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에서의 통합입니다. 

해리된 정신을 통합한 환자는 더이상 환자가 아닙니다. 그는 무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무당은 자신이 모신 신(神)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명을 받습니다. 병든 이를 낫게 하고 마음 아픈 이를 어루만지며 슬픈 이를 달래는 이가 바로 무당입니다. 


무당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큰 상처를 딛고 일어나 분열된 자아를 통합한 존재입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비한 능력은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인간 정신의 한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뇌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 현재도 인간의 마음의 비밀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연한 계기로 하루아침에 외국어에 통달했다는 사람이나 사물을 투시하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등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목격합니다. 

최면이나 명상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발견하거나 훈련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신실하다 못해 실로 처절한 무당들의 기도는(물론 제대로 된 무당들에 한해서) 인간의 정신을 고도로 집중시키고 미처 발견되지 않은 뇌의 어떤 부분을 활성화시키는 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무당의 역할입니다. 무당은 자신에게 생긴 능력을 결코 자신의 부귀를 위해 쓰지 않습니다. 과거의 자신처럼 상처입고 아픈 중생들을 돌보는데 사용하지요. 또한 무당은 신과 인간을 중재하고 모든 맺힌 것(갈등)을 풀어내고 화해를 이루어 내는 이들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 말살과, 군사정권의 미신타파 정책 이후로 한국에서 무당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흑주술(?)로 남들에게 저주를 걸거나 자신을 찾아온 이들을 등쳐먹는,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비과학적인 미신을 조장하는 이들로 묘사되는 무당들의 존재와 그 의미를,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문화에서의 신병과 무당의 의미를 심리학의 범위 내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종교적 신념을 비하 또는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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