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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30. 2016

무당은 나쁜 사람인가?

무당(巫堂) 바로 알기

무당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부정적입니다. 최근의 최순실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무당은 신의 목소리를 전한다는 것을 무기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나라를 망치고', '부정을 저지르는' 천하에 나쁜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사람들을 현혹시켜 국정을 농단한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당이 아닙니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승려, 목사 등의 이력을 가진 사이비 종교 영생교의 교주였습니다. 최순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면 최순실은 사이비 교주이지 무당은 아닌 것이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무당은 비과학적인 사술로 세상을 현혹시키고 가정을 파탄내고 국정을 농단하는 이들을 칭하는 보통명사가 아닙니다. 존경하는 도올 선생님이나 이재명 성남 시장 등까지 무당의 의미를 오용하고 계시니 문화 연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물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처벌받을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하겠으나 이러한 국가적 이슈에 한국문화의 큰 축을 차지하는 무속과 무당에 대한 이미지가 더럽혀지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번 글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무당은 우리나라의 토속 종교 무속(巫俗)의 사제를 일컫는 말입니다. 무속은 동북아시아 샤머니즘(Shamanism)의 한 갈래로 주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신앙입니다. 샤먼은 샤머니즘의 사제로서, 하늘과 땅을 잇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당이 곧 샤먼인데요. 같은 샤먼이라고 해도 시베리아와 몽골의 샤먼과 한국의 무당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자

북방계 샤먼이 신(神)의 목소리를 전하는 방법은 샤먼이 굿을 통해 트랜스(trance) 상태에 들어가면 그의 영혼이 신계로 올라가서 신을 만나 신의 목소리를 듣는 식입니다. 반면 한국 무속에서 무당은 자신의 몸에 신을 내리게 합니다. 신은 무당의 몸에 들어와 무당의 입을 통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지요. 이렇게 신 내림을 받는 무당을 강신무(降神巫)라고 합니다. 


한편, 전통적으로 한강 이남의 무당들은 신을 직접 받지 않고 오래 전부터 대를 이어 제의, 의식으로서의 굿을 주관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들을 세습무(世襲巫)라고 합니다. 이 세습무는 해양을 통해 남방에서 전래된 주술사 계열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도 씻김굿, 남해안 별신굿, 동해안 별신굿이 세습무 집안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고 있지요.

그럼 이 무당들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일까요? 


먼 옛날 제정일치 시대, 무당은 곧 군왕이었습니다. 국조 단군왕검의 단군(檀君)은 몽골, 터키, 중앙아시아 일대의 Tengri를 한자로 음차한 말로 Tengri는 '하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단군이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이, 즉 제사장을 뜻하는 말이며, 왕검은 군왕이란 뜻으로 단군왕검은 제사장 겸 군왕, 다시말해 제정일치의 군주를 칭하는 말인 것입니다.

단군(Tengri)은 우리말의 '당골'로 이어지는데 당골은 곧 무당을 이르며, 곳에 따라서는 무당의 의뢰인(client)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주 가는 가게를 '단골집'이라고 하는 게 여기서 온 표현이죠. 시대가 지나면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고, 불교 등의 외래종교가 전래되면서 무속은 중앙에서 밀려나 점차 민초들 사이로 내려오게 됩니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오면 무속은 공공연히 배척의 대상이 됩니다. 유교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입니다. 유학의 조종이신 공자(BC551~BC479)께서 이미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라며 현실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신 바 있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욕구와 사연들은 누가 해결하겠습니까.


그 조선조차도 국무당을 두고 왕실의 대소사와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 하늘에 빌도록 하였으니 일반 민초들 사이에서 무속의 영향력이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 하여 괴이하고 어지러운 것들 일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던 사대부들도 집안에 큰일이 있으면 뒷구멍으로 무당을 찾았으니까요.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 무속은 조선의 모든 것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엄청난 탄압을 받습니다. 일제는 우리의 전통신앙은 금지하고 일본 전통신앙인 신도(神道)를 강요했는데(신사참배), 특히 많은 사람이 모이는 무속의 굿은 조선인들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일본인들에게 눈엣가시였겠지요.


무속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미신타파운동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명맥이 끊어진 한국 무속은 이제 근대화에 방해가 되는 미신으로 폄하되어 철저히 파괴되고 망가졌습니다. 


신당은 무너지고 신도들도 떠나갔습니다. 무당들은 직업을 바꾸거나 자신이 무당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죠. 이후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무속은 철저히 미개한 것,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무당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제 잇속이나 채우는 탐욕스러운 존재로, 혹은 나쁜 의도를 갖고 남에게 저주를 거는 이들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당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들일까요? 문화에는 문화가 그 문화 구성원들에게 수행하는 역할이나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의 기능에는 현시적 기능과 잠재적 기능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비가 안 올 때 지내는 기우제의 현시적 기능은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고, 잠재적 기능은 '구성원들의 불안 해소와 결속력 증대'라는 것입니다.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내리지는 않습니다. 비과학적인 믿음이지요. 미신입니다. 그렇다면 기우제를 없애버리면 어떨까요? 비가 안 온다는 불안이야 과학적 사고로 해소할 수 있다지만 기우제를 통해 되새겨왔던 사람들과의 유대와 연대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과연 무당이 한국문화해서 수행했던 기능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무당은 제관(祭官)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간이 초자연적 존재에게 지내는 제사가 중요했던 고대에 제관은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무당은 제사의 형식과 내용, 순서를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신과 직접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마을(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신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둘째, 무당은 컨설턴트였습니다. 컨설턴트란 고문 또는 자문을 맡은 사람이죠. 제관으로서의 역할 중에는 마을(혹은 개개인)의 대소사에 대한 조언이 있습니다. 무당의 조언은 신에게서 옵니다. 무당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들은 자신의 일을 신이 돕는다는 데서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확신에 찬 태도는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법이니까요.


셋째, 무당은 상담가입니다. 이 기능은 지금도 대단히 중요한데요.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 이유 중에는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하소연하고 감정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 빠질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에게 통제감의 욕구(need for control)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이 전해주는 무당의 조언은 자식의 장래, 취업의 시기, 사업의 전망 등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한 통제감을 제공합니다

넷째, 무당은 의사였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의학의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과거에 무당은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마마(천연두)를 막기 위한 '마마배송굿'과 더불어 다양한 병을 치료하기 위한 치병(治病)굿들이 있었죠. 마음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도 웬만한 병은 눈에 띄게 호전될 수 있었을 겁니다.


다섯째, 무당은 연예인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볼 거리,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옛날. 무당들의 굿은 하나의 놀이판이었습니다. 실제로 축제 의미의 굿들도 많이 있었고, 치병이나 씻김 등의 이유로 하던 굿에도 노래와 음악, 춤은 필수요소입니다. 무당들이 당시 일반인들이 입기 힘든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고운 화장을 한 채로 노래와 춤을 선보이면 소녀시대가 따로 없었을 테지요

어떻습니까? 그래도 무당이 나쁜 사람들 같으신가요?



무속은 비과학적이다? 맞습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을 제외하면..  무당의 컨설팅이나 상담, 의료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당들의 행위에 대한 심리적 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고을의 사또가 채워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저 멀리 한양의 임금님이? 


지금은 과학의 시대이니만큼 무당의 조언을 새겨 듣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무당의 존재는 그 잠재적 기능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무속을 미신이라 폄하만 한다면 우리는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당은 오랜 시간동안 한국인의 삶 속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슬픔과 고난을 잊게 하고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었던 우리의 조언자이자 이웃이었습니다. 세치 혀로 신도들을 등쳐 제 배를 불린 무당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은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단일직종 성범죄자 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개신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아직은 거둬들일 때가 아닌 것처럼 말이죠.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퇴보한 이 엄중한 현실에서 다소 동떨어진 주제일 수 있지만... 신내림을 받은 적도 없고 대대로 지역사회에 봉사한 바도 없는 사이비 교주의 딸이, 수천년간 민초들의 삶을 어루만졌던 무당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문화연구자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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