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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늘바람 Oct 13. 2019

고양이와 나 02

밍밍이에 대하여_2019 가을

  밍밍이를 생각하면, 밍밍이를 생각만 해도 슬픈 노래를 몇 시간이고 들은 것 같은 먹먹한 기분이 된다.

  밍밍이는 정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고양이다.

  누구나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제일 예쁘고 제일 귀엽고 제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로 밍밍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다. 이건 정말이다. 왜냐면 한번 밍밍이를 만난 사람은 평생 다시는 밍밍이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밍밍이 때문에 우리 집에 놀러 오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밍밍이는 TV에 출연한 적도 있다. 밍밍이는 정말로 대단한 고양이다.


  우리 집에는 세 마리 고양이가 있다. 세 마리 다 품종묘이고 나이가 비슷하다. 우리 집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띵똥이는 스코티시폴드이고 7살에 우리 집에 와서 5년을 함께 살았으니 12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 함께 살게 된 두 마리는 밍밍이와 이쁜이다. 밍밍이는 코가 눌린 찡코이고 (전문용어로는 단두종이라고 한다. 밍밍이와 해외여행을 가려고 비행기를 태우는 법을 검색하다가 단두종은 이제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한 품종은 모르겠지만 페르시안 히말랴얀으로 추정된다. 이쁜이는 하얗고 풍성한 털을 가졌던(과거형이다) 터키쉬 앙고라이다.


  띵똥이는 전에 키우던 주인이 임신을 하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라비라고 했는데 영 입에 붙지 않아서 남편과 상의하에 띵똥이로 개명했다. 이쁜이는 대학생들이 키우다가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밀가루였는데 내가 이쁜이라고 바꿨다. 밍밍이는 원래 밍밍이였다. 밍밍이는 07년에 태어났다고 했다. 키우던 주인이 인도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세 마리 다 12~13년을 살았으니 나는 아침마다 '살아있어 주어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고, 잠들기 전에는 셋 다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언제 떠나도 이상할 거 없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라고 주문처럼 말한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인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 내 고양이를 떠나보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슬픈 일이 지나가면 결코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주문이라도 외워본다. 사료도 비싼 것으로 바꿔주었고, 캣 페어에서 얻어온 샘플들을 실험처럼 종류별로 그릇에 담아 먹여보기도 한다. 캔도, 추르도 한 번씩 사서 먹인다. 화장실은 하루 두 번 치운다.

  세 마리 모두 5~7세 사이에 만났으니 제일 귀여울 때 애기 때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다. 얼마나 예뻤을까? 얼마나 귀여웠을까? 얼마나 작았을까? 나는 그냥 상상만 할 수밖에 없다. 밍밍이는 어릴 때 사진을 많이 보내주어서 어느 정도 상상하기가 쉬웠지만 띵똥이와 이쁜이는 어떤 애기들이었을지 궁금하다. 아. 나도 예쁠 때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희들은 왜 다 나이 들어서 나를 만났느냐.


 

어린 시절의 밍밍이


  밍밍이는 정말 이상하게 생겼다. 반면에 이쁜이는 정말로 예쁘다. 미인이다. 우리는 미녀와 야수라고 별명을 붙여서 불렀다. 밍밍이는 야수 말고도 별명이 많다. 강아지는 양반이고 너구리로 오해를 받았던 적도 있다. 곰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꼬리 근처에 대변을 달고 다니는 사건이 반복되어서 똥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멋진 무덤 사진을 보곤 오스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밍밍이는 그냥 밍밍이다. 밍밍이는 정말로 멋진 고양이다.


  밍밍이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야옹, 하고 울지 않는다. 목소리를 낼 때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하품하듯이 아아아오 하고 말하다 말듯이 운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꼭 근처에 누워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본다. 절대로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가 잠이 든다. 마치 뭐하냐, 잠이나 자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꼭 엿듣는 것처럼 몰래 다가와서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러다가 또 잠이 든다.

  

엿듣는 듯한 표정의 밍밍이



  밍밍이는 밖을 좋아한다. 시골에 살 때는 대문을 열어두고 산책을 다니게 했다. 다른 고양이는 안 돼도 밍밍이는 보내줬다. 왜냐면 밍밍이는 꼭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옆집 마당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 돌아온다. 근처에 사는 들고양이를 쫓아가다가 얻어터지기도 하고 귀뚜라미 같은 것을 물어오기도 했다. 한 번은 새끼 쥐를 물어와서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갖고 놀길래 그냥 놔주자, 했더니 놔주었다. 새끼 쥐는 창문 밖으로 비틀거리면서 기어나갔다.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모기도 못 잡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꼭대기층이라 마당이 있어서 밍밍이는 주로 밖에서 지낸다. 모기가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문을 항상 열어둘 수가 없으니 밍밍이가 나가고 싶다 할 때는 문을 똑똑, 하고 들어오고 싶다 할 때도 문을 똑똑, 하면 열어주는 방식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이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밍밍이는 복슬복슬한 털이 정말 예쁘고 포근하다. 밖에서 지내기 때문에 밍밍이를 안으면 꼭 손을 씻어야 하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십 분 이상 안고 있을 수 있는 고양이다. 겨울에는 이불속에서 같이 잘 것이다. 겨울에 밍밍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름에 밍밍이는 시원한 그늘을 찾아 집안과 집 밖을 돌아다닌다. 폭염이 한창이던 여름 화장실 타일에 배를 딱 붙이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화장실에 누워보았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밍밍이는 천재 고양이다. 정말로 똑똑하다.


묘한 포즈로 앉은 밍밍이



  밍밍이를 동물병원에서 데려온 이전 주인이 밍밍이를 처음 데려오던 날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집 근처의 동물병원이었는데 하루는 남동생이 전화를 했단다.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데려오고 싶은데 고민이 있다고. 누나는 무슨 고민이냐고 물었고 남동생은 너무 못생겼다고 말했다고 한다. 누나는 당장 달려가 미용을 시키고 주사를 맞히고 밍밍이를 데려왔다고 한다. 동물병원 선생님도 형제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은지가 꽤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 밍밍이를 생각하면 정말로 마음이 먹먹해진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혼자 그 유리창 안에 남겨진 밍밍이. 어린 시절의 밍밍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밍밍아. 너는 왜 이렇게 늦게 나를 만나고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거냐. 밍밍아. 정말로 네가 있던 시간과 없을 시간은 다를 것이다. 밍밍이가 있던 세상과 없을 세상은 전혀 다를 것이다. 나도 다를 것이다. 이미 밍밍이가 없던 나와 있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밍밍이는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다. 밍밍이는 지금 저쪽에 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나는 밍밍이가 정말로 좋다. 제일 좋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똥을 묻히고 다녀도 좋고 화장실 가는 나의 발을 탁 걸고 넘어질 뻔하게 약 올려도 좋다. 눈곱이 한 움큼 끼어도 좋다. 밍밍이는 그냥 좋다. 밍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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