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늘바람 Oct 02. 2019

여행과 나

심심한 여행자_2019 가을

  베트남은 세 번째 방문이고, 이번에는 붕따우와 달랏을 다녀왔다. 보통 달랏은 무이네 혹은 낫짱과 묶어서 다녀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달랏에만 4박을 지냈다. 붕따우는 호치민에서 배를 타도 되고 버스를 타도 되고 사치스럽게 택시나 차를 불러서 타도 된다. 나는 사치스럽게도 차를 불러서 갔다. 금액은 6~7배 정도 차이가 난다. 거점은 호치민으로, 붕따우에서 호치민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달랏으로, 다시 호치민으로 이동한다. 내 집 드나들듯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아는 사람 정도라면 이렇게 편하게 지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친구 부부는 호치민에 취업을 했다. 그전까지는 베트남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쌀국수만 먹을 줄 알았다. 친구가 이사를 가니 그저 한 번 가보자는 심정이었다. 여행보다도 친구가 그리웠다. 그렇게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 되었다.


  붕따우는 바닷가이고 달랏은 산이다.

  붕따우에서는 예수님을 보고 해산물을 먹었다. 달랏에서는 꽃과 기차와 호수를 보고 와인을 마셨다.


  이번 여행은 아니지만 푸꾸옥 섬도 여행을 갔었다. 그땐 너무나 화가 났다. 리조트들은 더 멋지게, 더 크게 짓고 그 안에서 모든 소비가 이루어지게 만들어놓았다. 심지어 프라이빗 비치라는 이름으로 해변에 줄을 쳐놓았고, 바다가 누구 맘대로 너네 꺼냐, 라며 나는 잘도 헤집고 다녔지만 현지인들은 그러지 못하는 눈치였다. 현지인들은 따로 가는 비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으리으리한 리조트 옆으로 조금만 가면 짓다만 판잣집에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아 컴컴한 방 안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 나는 정말로 푸꾸옥에서 화가 많이 났다. 아무리 예쁜 바닷가라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반면 붕따우는 같은 바닷가라도 그런 모습은 없었다. 호치민에서 놀러 온 수많은 현지인 여행객과 외국인 여행객이 다 뒤섞여 놀았다. 재밌었다. 안정된 관광지라는 느낌이었다.

  예수상을 보러 가는 길목은 베트남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인지 오토바이에 함께 걸터앉은 연인들이 많이 보였다. 880개의 계단을 올라가는데,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작은 정원들도 마련되어 있고, 마치 대중가요 같은 경쾌한 찬송가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땀이 나면 바닷바람이 식혀주었다. 예수상의 안 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수님 어깨의 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 그곳은 일부러 건축 설계를 그렇게 한 듯이, 아주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올라갈수록 점점 더 좁아진다. 올라가는 사람도, 내려가는 사람도 양보하고 배려하고 작게 말하고, 그래야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말이다. 마지막 어깨로 들어가서 딱 2초간 붕따우의 풍경을 보고 얼른 내려왔다. 다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니까 오래오래 감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성당에 다니는 엄마에게 줄 작은 예수상을 샀다.

  유명하다는 반꼿을 먹으러 가고 싶어서 구글에서 검색해서 택시 아저씨에게 보여주었고, 아저씨는 지도를 보며 주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꼬불꼬불한 골목길 끝은 막다른 길이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정말 크게 웃었다. 그리고 구글에 나오지 않은, 좋은 까페에 내려달라고 했다. 바다 앞에 있는 까페 겸 술집에 내려주었다. 낮이었으면 바다가 보였겠지만 날이 저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2700원짜리 마가리타를 마셨다.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달랏은 도시 한가운데 아주 커다란 호수가 있다. 한 바퀴를 천천히 걸으니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호수를 중심으로 한 도시는 풍요롭고 여유로왔다. 고산 지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가깝다.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밭다. 딸기는 그냥 먹으면 맛이 없지만 쨈이나 쥬스로 먹으면 천상의 맛이다. 딸기만이 아니고 모든 과일로 만든 쥬스, 아이스크림, 요거트 같은 것에는 생과일이 잔뜩 씹힌다. 커피도 맛있다. 내가 있는 기간에는 운이 좋게도 비가 안 왔지만, 비가 왔어도 참 좋았겠다 싶었다.

  내 평소 여행 습관대로 마냥 걷다가 예쁜 정원 까페를 발견했다. 저녁시간이어서 음식도 있냐고 물었더니 음료만 있다고 하여 다시 마냥 걸어 베트남식 백반집을 찾아 들어갔다. 메뉴판도 없는 식당에서 번역기로 주문을 했다. 삶은 달걀조림이 맛있어서 달걀만 2개를 먹었다. 계산을 하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가게를 나서려고 하니 아주머니가 내 핸드폰을 손에서 빼서 왼쪽 어깨에 맨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주었다. 떨어뜨리거나 훔쳐간다는 말을 한다고 느낌으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정원 까페로 돌아갔다. 그사이 정원의 한가운데 촛불로 커다란 하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하트까지 가는 촛불길도 있었다. 그 끝에 커다란 빨간 장미 한 다발이 있었다. 그렇게 아주 조용하고 귀여운 프러포즈 이벤트를 구경했다. 까페 사장님과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며 비틀스의 노래를 불렀다.


  호치민은 갈 때마다 변한다. 일 년도 안 되어 고급 아파트 단지가 몇 개나 생겼다고 한다. 외국인도 엄청 많고, 또 더 많이 올 거라고 한다. 공기도 엄청 안 좋다. 막 빠르게 변하고, 막 뭐든지 많이 생기고, 막 뭐든 하면 잘 될 것 같고, 막 막 빨리 어떻게든 아파트 같은 것을 사야 할 것 같고, 막 막 막 땅도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딱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 중후반 신도시 아파트를 바라보던 부모 세대의 마음이 이랬을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 같은 조바심. 그 조바심은 호치민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친구들과 우연히 발견한 바에 갔다. 아주 오래된 건물의 3, 4층을 개조해서 만든 빈티지하고 멋스러운 곳이었다. 마침 해피아워 시간이라 3잔을 시키면 6잔을 준다고 했다. 같이 간 친구들은 술을 못 마셔서 모두 내가 마셨다. 영어 메뉴가 없어서 직원분이 6잔의 메뉴에 대한 설명을 일일이 영어로 적어주었다. 난생처음 영어로 된 러브레터를 받은 것 마냥 설레어서 고이 간직했다.  


  나는 여행을 가서 별다른 걸 하지 않는다. 그냥 걷기만 한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걷는다. 오토바이는 운전을 못해서 빌릴 수가 없고 택시는 목적지가 없어서 탈 수가 없다. 그냥 걷는다. 그렇게 걷다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맥주를 마신다. 그게 다다. 정말 별 것 없는 여행자다.

  이전의 다른 여행들을 떠올려보아도 나라는 사람의 여행은 별 볼 일 없다. 사진도 잘 안 찍고, 검색보다는 책자를 선호하여 항상 짐이 무겁다. 이리도 비효율적일 수가 없다. 아. 나도 유명하다는 곳도 가보고 맛있다는 것도 먹어보고, 사진도 찍어두고 그럴 걸. 하지만 다음 여행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정말 재미없고 소소한 심심한 여행자다.

2019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