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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Jun 17. 2024

내가 속을 줄 알았지?

손이 세 개라면

아침이면 머리를 감는다. 이렇게 날이 더워질 때면 샤워기 손잡이를 오른쪽 끝까지 돌려서 제일 찬물로 감는다. 그렇게 나를 깨우고 생각을 깨운다. 머리는 주로 욕조에 허리를 굽혀 감는다. 그래서 머리 감을 때면 오른 무릎을 욕조 측면에 대고 머리를 숙인다. 겨우 직경 1~2센티미터가 닿았을 텐데 그런 기댐도 꽤 힘을 덜어준다. 난 늘 그 고마움을 느끼며 머리를 감는다. 


그런데 오늘은 머리를 감으며 왼손의 유려함을 느꼈다. 오른손으로 샤워기를 들고 머리 이곳저곳에 물이 닿게 하는데 왼손이 연신 그 물줄기를 따라 움직여 머리칼을 만졌다. 무의식처럼 해왔던 일을 찬찬히 느껴보니 왼손과 오른손이 짝을 이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내가 왼손을 홀대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늘 오른손이 모든 일을 한다고 여겨 한때는 왼손이 왜 있는 거야 하고 불평했고, 왼팔이 아플 때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손 하나가 없다면 많이 불편했겠구나 같은.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사람의 손이, 팔이 세 개였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세 개의 손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 이용했을 것이고, 사용하는 물건도 그런 모습으로 디자인되었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 누리는 양손의 편안함은 편안함이 아니었을 것이다. 양손을 가진 우리가 한 손이면 불편할 거라고 하는 것처럼, 세 개의 손을 가졌다면 양손은 불편한 것이 되었을 거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내가 느끼는 편함과 불편함이 허상일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그저 습관처럼 관습처럼 그리 행동하고 느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상이 가진, 혹은 만들어낸 일반화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거기에 맞춰 편안함과 효용을 느끼는 것일지 모른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건데 그걸 못해서 좌절하는지도 말이다. 그렇다면 난 지금 뭐에 좌절하는 걸까? 작은 키가 아쉬웠는데, 더 늘씬하지 못해서. 기억력이 나빠서 불편했는데 읽은 책 제목도 헷갈려서. 일이 줄어서 아쉬웠는데 여전히 쓰고픈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늘어놓으면 누구든 꽤 많은 넋두리를 할 것이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꼭 그럴 일은 아닐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잇다 보니 괜히 킥킥 웃음이 나왔다. '세상 너 우스운 거였구나' 하며 '내가 속을 줄 알았지?' 하는 기분이 든 것이다. 

가만있어보자, 우선은 내가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았으니 완전히 그 일반화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거 같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는 이 생각을 꺼내서 해볼 거다. 세상이 만든 허상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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