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 Jun 20. 2024

이기적인 기억

"‘뭐 그런 이기적인 기억이 다 있어?"


누군가 한 사람에 대해 쏟아놓은 기억을 듣고 내가 한 말이었다.

기억 속의 한 사람은 몹쓸 사람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몹쓸 짓만 하여 상처만 낸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본 그 사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행동만 한 것도 아니었다. 쏟아놓은 누군가의 기억은 내 생각에는 너무나 이기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억은 언제나 이기적이다. 같은 일을 겪고도 사람은 제각기 다른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억하고, 담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은 어차피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또 하나, 기억이란 그 자체로도 이기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좋은 것, 기쁜 것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데, 그래서 더 행복하고 싶은데 기억은 그렇지 않다. 좋았던 것은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 버리고, 나쁘고 아픈 기억만 굵은 조개껍질처럼 꿋꿋이 남았다. 조개껍질은 가슴에 남아 가끔 다시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누군가 쏟아놓은 이기적인 기억은 기억의 속성대로 한 사람에게 상처로 오래 남을 것 같다.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상처를 가지고, 어떤 힘든 날은 울음을 울 것도 같다. 내가 그 기억은 이기적이며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 사람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벌써 아픈 기억으로 남아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추억만큼 힘이 센 건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추억이, 기억이 나를 지탱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은 나쁜 기억대로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나쁜 기억은 노력해서라도 덜어내며 살려한다. 기억을 붙잡고 사는 것은 삶을 한없이 무겁게 만든다.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은 삶을, 기억까지 얹어서 무겁게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젠 살아낼 힘도, 시간도 젊은 날처럼 넉넉하지 않다. 좀 더 가볍게 살다가 깃털처럼 날아 떠나면 좋겠다. 아무 미련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을 좀 더 믿어보지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