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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Feb 14. 2024

좋은 선생님 고르기

학생보다 선생 인구가 더 많은 시대이고, 인터넷 덕분(?)으로 각종 홍보는 넘쳐나는데 제대로 된 선생님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음악 쪽에서도 그렇다. 영어 수학 같은 학과 과목이야 그래도 학부모들이 공부를 해봤다면 어느 정도는 분별력 있게 고를 수가 있을 텐데, 음악은 해본 부모님들이 많지 않고 또 주변에 알아볼 데도 마땅히 없어서 막막하게 여기시는 것 같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내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애들이 취미로 즐겁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곳도 찾기가 힘들다 하고, 전공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선생님께 꾸중 듣는 게 레슨이라고 생각하면서 견디고, 선생님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바꾸는 게 눈치가 보여서  계속 다니는 경우도 흔하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레슨 업계를 들여다보면 좀 답답하다. 너무 비즈니스화되어 있고 공포 마케팅도 심하다. 입시생을 많이 가르치는 사람들을 보면 음악적, 교육적 마인드보다는 사업가 기질이 강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어떻게 학생들을 모집할지를 전략적으로 안다고나 할까. 한국은 누구 하나 잘하는 애 잡아서 성과를 내면 선생이 유명해진다. 그러니 준비도 안 됐는데 자꾸 콩쿨 내보내고 그러는 거다. 조금만 잘한다 싶으면 음악 전공시키라고 부추기는 선생들도 마찬가지. 학생을 위한 마음보다 자기 욕심이 앞서있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급한 학부모도 원인이다. 요즘은 저 선생님 스튜디오가 잘 나간대~ 하면서 우르르 몰려가는 학부모들이 있으니까.


입시 선생이라는 것도 뭔가 유행을 타서 한참 돈을 벌다가 딱 손 털고 다른 일 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수완이 좋아서 다른 일도 잘 하더라.) 한국의 입시는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안 틀리고 돌리면 성공하기 때문에 가르치기가 쉽다. 연습 해오라고 혼내면 된다. 너 이렇게 해서 어떡할래 한숨 푹푹 쉬면서 연습해서 다시 오라 하는 것이 어떻게 레슨이 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런 레슨 참 많다. 한국에서는 무서운 선생님 = 좋은 선생님이다.  


외국(특히 미국)에는 무서운 선생님이 없다. 아니, 돌아서면 무섭지만 학생 눈앞에서는 무서운 선생님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까? 암튼 연습 안 했다고 혼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처럼 무조건 '안 틀리고 잘치게'를 요구하지 않는다. 학생의 수준과 능력을 보고 어쨌든 그보다 좋아질 수 있도록 가르친다. 실력이 모자란 학생도 그 나름대로 발전할 수 있게 구체적인 솔루션을 주고, 잘하는 학생에게도 마냥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예술적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끈다. 지 잘난 줄 알고 연습 안 하는 건방진 애들에게는 웃으며 "You sound wonderful. There’s nothing more to teach." 하며 레슨 짧게 끝내놓고는 뒤돌아서서 '꺼져'하는 얼굴을 하는 건 조금 오싹한데 그게 미국 스타일이다. 할 의지가 있는 애들만 가르친다.


생각을 해 봤다. 왜 한국 선생님들은 애들을 혼낼까? 자기가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애들이 미숙한 건 아직 악기를 다루는 몸의 감각이 깨우쳐지지 않아서이다. 내가 요즘 운동 PT를 받으며 느끼는 건데 악기도 운동이랑 똑같다. 작년에 배웠던 트레이너 선생님은 나한테 특별한 설명이 없이 기계 다루는 법만 알려주면서 옆에서 숫자 카운팅만 했었다. '돈 참 쉽게 버시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그렇게만 해도 운동 효과가 없는 건 아니라서 그냥 따라 하는 거에 의의를 뒀었는데 올해 새로운 선생님으로 바뀌고 확실하게 알았다. 자기가 운동을 하고 제대로 몸을 아는 사람이 가르치면 다르다는 것을. 이 선생님은 안 되던 걸 되게 만들어준다. 지금은 레슨비가 아깝지 않고 전에 안되던 게 되니까 신기해서 (아주 가끔이지만) 집에 와서 연습도 하게 된다.


레슨이란 안 되는 게 왜 안 되는지, 그럼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선생이라는 권위로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혼내기만 하는 건 레슨이라 할 수 없다. 반복 연습을 시키기 전에 어떤 감각에 집중해서 무엇을 강화하기 위해 반복 연습이 필요한 것인지 알려줘야 하고, 무엇(what)을 하라 시키기 전에 어째서(why)와 어떻게(how)를 가르쳐 줘야 한다.  그걸 알려주지 않는다면 선생 본인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레슨을 하다 보면 내가 연습을 하고 있을 때 가르치는 것과 연주가 없어서 한참 쉬면서 가르치기만 할 때의 레슨 퀄리티가 다르다. 악기를 만지는 근육의 감각, 소리를 듣는 방법 등등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인데도 그걸 내가 실제로 활성화시켜 사용하고 있을 때 학생에게 설명하는 능력도 극대화된다. 사실 연습을 안 해도 학생들에게 지적은 할 수 있는데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설명하는 부분이 어눌해지더라. 잘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연주는 계속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에는 학생의 연령, 레벨에 맞춘 선생님이 별로 없다. 무조건 유명한 사람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직 기본기를 훈련해야 될 아이들에겐 거기에 맞는 선생님이 있는 것인데 무조건 큰 선생님, 미디어 노출 잦은 선생님만 쫓아가면 어떡하냐고. 그런 사람들은 애들 기초를 훈련시킬 시간과 인내심이 없을 뿐 아니라 애들 수준에 몇 단계 앞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서 더 큰일이다. 야구선수 이종범이 이정후 키울 때 레슨은 무조건 학교 코치들에게 다 맡기고 자기는 참견 안 했다고 했다. 학교 코치들 커리어로 보면 종범신과는 비교도 안 될텐데 말이다.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있는데 코치님들이 그 레벨마다의 전문가라고, 자기가 뭐라고 얘기해 줘봤자 그때는 필요한 소리도 아니고 알아듣지도 못하니 그냥 다치지 말라고만 했다더라. 시기에 맞게 필요한 선생님은 따로 있다.


선생님의 인성도 잘 봐야 한다. 잘 가르치느냐가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선생의 정서가 불안하다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다면 나 같으면 거르겠다. 학생에게 막말을 한다거나 애들에게 안 해야 될 소리를 하는 사람들 있다고 들었다. 인간으로서 봤을 때 아니다 싶은 사람을 레슨 선생님이니까 참는다? 아니라고 본다. 음악적인 실력을 따져보는 건 자신이 없더라도 사람 보는 눈은 누구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 상식이라는 걸 배운다. 음악이 무슨 벼슬이라고 그런 상식 다 져버리고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데. 인격 미달은 실력 미달이다. 아이들은 레슨뿐 아니라 선생님의 태도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가 미국에 처음 가서 놀랐던 건 교수님들이 무척 friendly 하다는 것과, 교수님들이 레슨이 끝날 때 자기 레슨이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학생인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교수님 자신을 평가하는 느낌. 자기가 말하는 음악적 컨셉을 내가 수긍할 수 있는지, 자신이 알려준 테크닉이 내가 연주하는 데 있어 수월하도록 도움이 되는지, 자신의 설명 방법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셨다. 티칭을 자기의 능력이랄까 실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자신의 티칭의 결과물이 학생의 변화와 발전인 것이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첼로 교수님 Julia Lichten은 어떤 학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자 "내가 아직 적절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다."라면서 "한 10년쯤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네."라고 하셨다.


한국 마인드로야 학생이 감히 레슨이 도움이 됐네 안 됐네를 따지는 것이 건방이겠지만 외국에서는 학생이 선생님께 "It was very helpful."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일상적인 표현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자기의 티칭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하고, 학생도 선생님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고 고르는 게 당연한 거다. 선생이 학생을 테스트해서 고르듯이 학생도 자기에게 필요하고 맞는 선생님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어렵다면 사람 보는 눈으로 선생님을 골라도 크게 위험하진 않을 것 같다. 결국은 레슨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 내 경험상 훌륭한 선생님은 인성도 좋았다. 인성만 좋고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착해 보여도 좀 답답한 게 있다. 묘하게 느껴지는 그 촉은 대부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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