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해병 순직 1주기를 맞아
지난 19일은 채 해병이 순직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고자 기꺼이 자진해서 그 빡시다던 해병대에 입대한 대한의 청년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고 채 해병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조차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채, 그 과정에서 특정 인물을 지키기 위해 권력이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 다투고 있는 중입니다.
꼴랑 별 2개인 해병대 사단장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실 전체가 움직인 모습이라니. 과연 02-800-7070은 누구의 전화번호였을까요? 7070은 세간의 이야기대로 천공천공의 의미였을까요? 아님 그가 아니라 그녀였을까요?
더 기가 막힌 건 이 채 해병 사건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종호 블랙펄 인베스트 대표와 임성근 사단장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언급하는 삼부토건.
정부여당은 그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지 않냐며, 음로론일 뿐이라고 일축하지만 이미 많은 국민들 머리 속에 삼부토건은 다양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삼부토건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중매하고, 굳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돕겠다는데 삼부토건이 등장하고, 또한 여야 가릴 것 없이 많은 유력 정치인들과 관련하여 언급되었던 삼부토건.
이 사건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2014년 4월 16일 있었던 세월호 참사가 떠오릅니다. 당시 2년차였던 박근혜 정부는 어찌 되었든 이 세월호를 수습한 줄 알았습니다. 엉망으로 사건 보고서를 발표하고, 유족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이고, 일베 등을 이용해 국민여론을 조작하면서 세월호 국면을 그럭저럭 넘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최순실의 테블릿이 스모킹건으로 떠오르면서 세월호가 다시 호명되었습니다. 너무 참혹해서 무의식 저편으로 보내버렸던 그 처절했던 기억이 분노로 되살아나게 되었고, 결국 탄핵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 겨울 광화문에 가면 파란 고래와 노란 리본이 보였는데요,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부끄러움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나 이번에는 채 해병입니다. 앞서 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다시 우리를 거리로,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뻔한 사실을 두고 거짓말하는 그들을 왜 그대로 두고 있느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그것인 사실인냥 호도하고 있는 저들을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이들을 크게 꾸짖지 못해 부끄럽고, 같은 기성세대로서 어른들의 염치없는 모습을 보여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염치를 잃어버려 수치심도 모르는 시대. 그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 비루하고 참담할 뿐입니다.
그래도 포기는 하지 않습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봤듯이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더디고 지난한 일이지만 한 발자국씩 실체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여당이 전당대회를 맞아 서로를 증오하고, 정부가 나서서 갑작스럽게 유전 발표 등을 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바짝 쫄아 있기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지요.
더운 여름,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