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롱 환자들과 깊어가는 하루
<day 11>
수현이가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그 동안 심심할 때마다 아빠 타령 할머니 타령 하더니 이제 드디어 어린이집 타령까지 왔다.
참고로 수현이는 어린이집에서 헤어질 때마다 50% 확률로 울던 아기였다. 오랜 칩거생활은 수현이의 취향마저 바꿔버렸다.(이 녀석이 어린이집을 가자고 매달리는 날이 올 줄이야...) 한편 바깥 외출에 목이 마른 아기들과는 달리 현욱이는,
집 밖에 세상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듯 했다.
요즘 현욱이는 거의 방치상태에 있다. 엄마가 아기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녀석은 하루종일 TV와 유투브에 빠져 지냈는데...
(제가 보고 있는 거 아니예요. 아기들한테 보여주는 거지. 형아야 그만 멍멍거리고 빨리 옷 입어!)
하루종일 앉아서 또는 누워서 영상물만 본 녀석은 남아도는 에너지를 아빠와 엄마에게 휘두르는데 사용한다.
(엄마 나랑 격투 시합해요)
(싫어 엄마는 평화를 사랑한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더더욱 나랑 격투해야지요!)
(귀찮아)
(나한테 질까봐 그러는거죠?)
(그래 엄마 약해빠졌다 질까봐 싫다)
(그럴수록 수련을 해야죠! 수련해서 강해져야 평화를 지킬 수 있어요!)
걱정이다. 다른 아이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넘치는 에너지가 주체되지 않아서 퇴근한 아빠와 태권도 격투 중)
(저렇게 힘이 넘치면 차라리 태권도 학원에라도 가면 좋을텐데 이 시국에 태권도 학원 보낼 수도 없고)
<day 12>
하루종일 tv만 보고 있는 현욱이가 걱정이 되어 생활계획표를 마련했다.
(이 시간에는 운동과 산책을 하고... 자 이렇게 그리고...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놀자.)
(좋아요! 그런데 유투브는 언제 봐요?)
(그럼 지금 시간은... 독서시간이네.)
(제가 책 갖고 올게요! 홍길동전 읽을래요!)
(그래그래)
(엄마 대감이 뭐예요?)
(아 그건 옛날 벼슬 이름인데...)
(여종은요?)
(그건 여자 노예의 다른 말인데...)
(서자는요?)
(아 그건...)
(엄마 책 읽어 주세요!)
(이건 무슨 말인지 알겠니?)
(어... 사실 몰랐어요)
(무당은 뭐예요?)
(아 그 뜻은...)
(내 책은?)
(엄마 나도 책 읽어줘요! 엄마! 엄마!
(엄마 뭐해요? 엄마 놀아줘요!)
(너흰 잠깐 있어봐 형아야 공부 좀 봐주게)
(무당이랑 점쟁이는 무슨 뜻인가 하면...)
갑자기 관심을 빼앗긴 아기들은 당황했다!
(다음시간은 영어네)
(영어는 나 혼자 못하는데 어쩌죠?)
(엄마가 도와줄게 따라 읽어봐)
(어어 이거 무슨 상황이지?)
(날 방치하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할 지 두렵지 않은가보지)
(어어 같이 가!)
(도현아 괜찮니?)
(어디가 아프니?)
(머리를 쿵했구나 그리고 또?)
(손도 아팠어 저런... 호해줄게 호!~)
(배도 아프다고? 응?)
(귀도? 어딜 어떻게 부딪힌 거니?)
(자자 전부 다 호 해 줄게)
(엄마 나도 아파요! 나도 호 해 주세요)
그렇게 관심이 필요한 나일롱 환자들과 함께 엄마의 하루는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