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신혼여행, 살림 합치기, 새 집 구하기, 계약하기, 추석선물발송, 인테리어. 혼자 살다가 둘이 살면 빨래의 양처럼 삶의 업무의 양도 두 배가 된다. 인생이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에 뿌듯하지만, 지금 해치워야 하는 업무의 쓰나미에 지칠 때도 있다. 이 와중에 다니던 직장은 당연히 잘 나가야 한다.
기본 업무는 그대로인데 대형 프로젝트가 주어지기도 한다. 우리에겐 그 TF가 인테리어였다. 꼼꼼한 성격인 남편은 소위 텅키라고 하는 한 명의 인테리어업자에게 의뢰하는 방식을 꺼려 했다.
모든 공정을 계획하고, 공정마다 다른 업체에 의뢰하는 반셀프방식. 텅키보다 여러가지 옵션을 추가해도 저렴하다. 둘 다 직장을 다니는 게 걱정되었지만, 매일 인테리어 유튜브를 보고, 관련 카페를 드나드는 남편의 강력한 의지를 보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일상갈등은 쏟아지는 업무와 피로 속 수많은 의사결정 사이에서 생겨난다.
별 것도 아닌데..
주방 상판 쓸 거야? 수전은? 반셀프를 결정하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의사결정이 쏟아졌다. 모든 결정사항에서 둘의 의견이 일치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하면 예산은 무한대로 올라가는데.. 예산 안에서 꼭 필요한 것만 하자.
삶은 드라마가 아니라 엄청난 클라이막스나 반전은 없다. 일상 갈등은 성냥을 한번 켰다가 바로 끄고 꽂아두는 것과 같다. 싸움이 될만하다가도얼른 다른 결정을 해야 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렇게 성냥갑에 수많은 성냥이 쌓일 때쯤, 작은 말 한마디가 큰 불씨가 되기도 한다.
요리대는 길게 빼달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작아? 도마를 놓으면 양파를 놓을 공간도 없어 보일 만큼 요상한 3D시뮬레이션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뭣이 중헌디?
오랜만에 회식을 하고 온 남편이 취했는지 그동안의 서러움을 쏟아냈다. 나는 자기랑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한 것뿐인데.. 그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 회사 앞뒤로 시간을 쪼개어 현장을 정리하고 들어오던 남편이 고맙고 미안했다. 집이 하자 없이 예쁘게 완성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둘이 함께 행복한 것이다.
한 정신과의사의 유튜브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결혼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외모나 성격이 아닌 나와 상대방의 문제해결능력이라고.
문제해결을 할 줄 아는 기본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해결 방식이 어떤지,서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의견을 어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부분이다. 해결은 하는데 그 속도 때문에 싸우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자주 못 올 동네 맛집
시원한 맥주에 꼬치를 먹고 싶다는 그의 말에 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곳에 데리고 갔다. 이제 이 동네 맛집 올 날도 얼마 안 남았다. 한 손에는 간이 잘 배인 꼬치를, 한 손에는 남편 손을 꼭 잡고 남은 공정 다투지 말고 잘 마무리하기를 다짐했다. 뭣이 중헌지, 가슴에 잘 새기기. 대장은 오늘도 이렇게 한 수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