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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다 Aug 10. 2020

쉽게 쓰여진 유럽 여행기. #0

#0. 프롤로그

프롤로그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 나는 베트남 항공을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베트남 항공을 이용해 출국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정말 베트남으로 출국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비용이 저렴한 항공편을 찾아 더 먼 곳으로 가려는 사람이다. 나는 유럽행 비행기를 이용했으므로 당연히 후자였다. 나 같은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지 여행객들 하나하나가 몸체만한 배낭이나 캐리어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물론 베트남 항공 역시 베트남에선 국적기 인지라 기내가 딱히 우리나라 국적기에 비해 불편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가도 13시간이나 걸리는 곳을 20시간이나 걸려 돌아간다는 것은 출발 전부터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환승을 위해 내린 7월 중순의 하노이 공항은 매우 덥고 습했다. 터진 댐에서 쏟아지는 것 마냥 비가 내리는 상태였기에 탑승객들을 게이트로 옮기기 위한 버스 입구에서 승객들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공항 직원의 모습이 매우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노이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엔, 강남 센트럴 버스 터미널 보다도 못한 낡고 작은 공항이었는데, 그래도 그 옆의 경부고속버스터미널보단 나았다. 여담이지만, 서울과 영남은 우리나라 인구분포의 양대 축인데, 그 축을 잇는 강남경부터미널은 어째서 문화재청의 국보 재정을 바라는 것 마냥 6.25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런 하노이 공항에서 환승대기 3시간 30분 동안 할 만한 것이라곤 술병에 담긴 코브라가 전갈을 문 채 나를 노려보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일 정도였는데, 알다시피 그런 흥미 거리들이란 철지난 공업도시의 스러져가는 놀이공원처럼 채 5분이되기도 전에 지루해지기 마련인 것들이다.


 따라서 누구든 20년간 피워 온 담배를 바로 얼마 전에 끊고, 새롭고 건강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노이 공항을 경유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살 것이라곤 딱 두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구멍가게 같은 면세점에서 파는 담배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맛으로 미루어 봤을 때 재료에 담배꽁초가 들어가는 것이 분명한 (색깔마저도 그러하다.) 현지 음료이다. 그나마도 베트남 화폐가 없는 환승객들은 한화로 칠천 원 정도 하는 가격의 유로나 달러를 지불해야 그것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에 의해 새롭고 건강한 삶을 꿈꾸던 사람도 이내 면세점에서 담배를 한 보루나 사서 통째로 들고 비가 새는 흡연실에서 국적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불을 빌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들 모두는 담배를 피우는 동시에 하염없이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가끔 베트남 항공의 조종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제복을 입고 와서는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는 것 외에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3시간 정도의 환승 대기 시간동안 평균적으로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하노이 환승 게이트의 단위면적당 담배 소비량은 전 세계 그 어떤 대도시와 비교하더라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대 후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던 나조차도 결국 그들 틈에서 연기를 태우며 시계를 쳐다보게 되었으니까. 


 덕분에 이후 11시간의 비행을 거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했을 때, 나는 몹시 지쳐있었으며, 거의 30시간 동안 씻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처치곤란의 담배를 거의 한 보루나 손에 든 채 얼른 숙소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짚신벌레 정도의 사고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쉽게 쓰여진 유럽 여행기. #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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