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of Grace 2020
12월 2일부터 11일까지의 전시회 일정이 있었다.
서울의 한 작은 갤러리에서 준비를 했었는데, 코로나와 한파가 함께 덮치는 바람에 하루 더 일찍 종료하게 되었다. 방문객을 찾아보기 힘든 썰렁한 전시였기에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름 배운 것이 있는 것 같다.
그중 하나는 그림을 그릴 때 결정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결정이냐면, 언제 붓을 떼야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주구장창 덧칠과 덧칠을 거듭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림이 더 나아지기 (enhance) 보다는 더 탁한 느낌이 되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덧칠을 하면서 그림의 깊이가 생겼지만, 동시에 깨달았던 것은 지나치면 자칫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집착하면서 그린 작품이 한 점 있었다.
처음 도전하는 추상화였기에 나름 공을 많이 들였는데 너무 지나친 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는 새로운 시도였기에 무언가를 배운 느낌도 든다.
그림 그릴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의 시간 조절인 것 같다. 전업작가로서 작품을 할 때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그냥 왕창 투자하면 좋겠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도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 그림이 그냥 혼자 만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있으려면 일단 투자하는 시간이 적절해야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서 붓을 잡고 그리는 게 내 일이지만, 이게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늘 느끼고 있다. (세상 어느 일이 만만하겠느냐만...)
그래서 때로는 내가 언제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곧잘 들곤 한다. 할머니가 되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으려면 체력도 잘 다져야겠구나, 그리고 꼭 그림이 아니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전시회를 끝나고 한동안 쉬다가 오늘에야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개인 SNS와 브런치에 정리해서 올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시회가 성공적이지 못했기에 살짝 우울한 기분도 들었고, 그림 그리는 일 자체에 대한 무용함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림 그리는 일은 늘 유용함과 무용함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 한 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게 한다.
그래도 어쨌든 올해는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직업이나 외부의 일을 찾아 뛰어다니기보다 작업실에서 상당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비록 전시는 성황리에 끝나지 못했지만, 나에게 이번 일 년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영혼을 살찌우는 자양분의 시간이 되길 바라며...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