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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Apr 15. 2024

열다섯 번째 로그아웃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2024년 4월 14일 일요일


1830 OFF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시간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이 없어진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더 무기력 속에 침잠해 있을지. 자꾸 잠이 쏟아진다. 몸이 고단해서 잠이 오는 건지. 그저 무기력의 친구가 잠인 건지. 심각한 불안 장애를 겪을 때는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낮이고 밤이고 침대에 머리만 갖다 대면 잔다. 이건 불안을 넘어선 무기력 장애의 증상인 건가.


요즘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운동인데, 오전에 다녀오면 피곤해서 오후 낮잠으로 이어지고 일어나면 저녁이다. 낮에 빈둥거리다가 저녁 시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늦은 밤에 운동을 다녀와 씻으면 애매하게 졸음이 가시고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다. 그리고 다음 날 정오까지 잔다. 오전에 운동하면 상쾌한 하루에 대한 기대를, 늦은 저녁에 하면 피곤함에 이른 꿀잠을 기대하는데 전혀 원하는 바대로 되질 않는다. 생활 패턴이 심각하게 망가졌다. 곧 우울감에 잠식될 거 같다. 아닌가 이미 우울한가. 


1850 - 2030 공원 산책 및 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下>

낮에 운동하고 들어와 씻고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끼니를 해결하고 나서 핸드폰을 끄니, 역시나 졸리다. 졸음을 물리치는 데 산책만 한 게 없다 보니 평소에는 거의 하질 않고, 이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그제야 좀 걷게 된다.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 어쨌든 나가면서 책 한 권 들고나갔다. 공원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사위가 어두워졌지만, 밝은 가로등 아래 벤치에 자리 잡고 그림자를 피해 가며 책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은 술술 읽히지만 한 호흡에 읽기 버겁다. 때로는 놀라게 해 심장을 내려앉게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외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청승맞게 울면 안 되니까 집으로 돌아왔다.


2040 - 2120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下> 완독

집에 들어와 마저 책을 읽고 있는데, 책상에 뭔가 떨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웬 초록색 애벌레 한 마리가. 당황. 공원 나무에서 떨어져 어떤 경로로 실려 왔단 말인가. 책 한 권 달랑 들고 다녀왔는데, 책 어딘가에 실려 왔나 아니면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왔나. 다행히 움직이진 않는다. 아마 움직였다면 소리를 질렀을 거다. 으아아악!!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새와 매미 소리, 그런 것들이 좋아 그냥 좋은 거야. 너와 마시는 맥주라든가..." (p. 240)

올해 목표가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 소설을 모두 읽는 거다. <양을 쫓는 모험>을 읽음으로써 '쥐' 3부작이라고 불리는 초기 세 작품을 모두 읽었다. 세 편 모두 같은 주인공 '나'와 그의 친구 '쥐'가 등장하기 때문인데, 앞선 두 작품에서도 비현실적인 요소가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 세계가 메인인데 반해 <양을 쫓는 모험>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후 작품에서 무수히 그린 비현실적 세계의 초석을 그리고 있었다. 


앞서 읽었지만 그 후 작품들인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처럼 지극히 현실 세계를 살아가던 '나'(보통 스스로를 따분한 사람으로 여기는 듯하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세계에 당도하게 되는데, 보통 '나'는 모든 게 명확하지 않은 의문의 상황에서 본인이 그 비현실의 세계에 당도하게 된 연유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플롯이다. 이 플롯을 사용한 첫 번째 작품인데 늘 그렇듯 명확하게 의문이 해결되거나 의미가 적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이후 작품들에 비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난해함 10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4정도. 



2130 - 2200 아니 갑자기 유튜브 오프라인 동영상 재생 안 돼서 씨름... (기기 한도가 초과라 오프라인 동영상 재생을 할 수 없다는데, 로그인된 기기들 다 로그아웃하고, 다시 로그인해 봐도 안된다.)

음악이 없으면 이 적막은 너무 괴로워. 음악만 재생하게 쏘오.


2200 - 2230 일기 쓰기


2240 - 2400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독서 저널 작성


2400 - 2420 홈 복근운동 루틴


2420 - 2430 독서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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