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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May 07. 2024

열여덟 번째 로그아웃

2024년 5월 5일 일요일

2024년 5월 5일 일요일


하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이다. 집이 2층이라 비 내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 좋다.


1800 운동 다녀와서 샤워


1815 설거지


1825 근황 이야기

생활패턴이 무너져 내리다 못해 땅으로 꺼져서 두더지 같은 삶이다. 몇 시에 일어났건 관계없이 초저녁 8시쯤 되면 엄청난 졸음이 몰려온다. 그때 자버리면 새벽에 깰 게 분명하니 억지로 참아본다. 그 시간에는 야구 중계도 있고,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에 영상 업데이트도 많아 뭔가를 보면서 겨우 잠을 참아낸다. 그리고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운동하러 헬스장엘 간다. 그 시간에는 사람이 없어 기구 사용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괜히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쾌적하게 운동할 수 있어 좋다. 그렇게 운동 다녀와 씻고 나면 그때부터 서서히 잠이 달아난다. 예능도 보고 책도 읽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튼다. 그러면 하루가 저무는 건지 시작하는 건지 모를 시간에 확실한 자괴감에 함께 잠에 들고, 대여섯 시간 후 그보다 더 확실한 패배감에서 깨어난다. 이보다 한심스러운 삶이 더 있을까.


이렇게 무너진 생활 패턴 덕에 새벽에도 거하게 먹는다. 그래도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체지방은 오히려 줄었다는 걸 방패 삼아 제쳐놓고 먹었더니 몸무게가 한 단계 올라가 내려 올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클라이밍도 못하고 있다. 클라이밍은 무게에 굉장히 예민한 운동이다. 1킬로만 늘어도 몸 컨디션이 완전히 달라진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던 클라이밍이었는데, 무거워진 덕에 몸에 과부하가 금방 오고, 무브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당연히 재미도 없다. 취미 하나를 잃어가는 중이다. 


그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잠잠하던 허리 디스크가 재발했다는 거다. 왼쪽 종아리에서 엉덩이를 지나 허리까지 저림 증상이 나타났다. 2년 전 한참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며 주사도 맞고 했었는데, 한동안 괜찮다가 최근 웨이트를 열심히 하면서 자세를 잘못했는지 저림 증상이 재발했다.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고 했던 그때의 진단을 잊은 것도 아니고 웨이트가 아닌 재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 것도 알았지만, 참다 보니 또 괜찮은 것도 같아 방치하며 2년을 지냈다. 그때보다 악화됐다는 진단을 받을까 다시 병원에 가기 무섭기도 하고, 이젠 디스크 주사 맞을 형편도 안된다는 지독한 현실도 괴롭다.


언제쯤 즐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1850 - 2000 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下)>


2000 - 2100 역시 이 시각이 되니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비가 많이 오고 또 이미 일찍 씻은 탓에 나가지 말까도 싶었지만 역시 비 오는 날 산책 참을 수 없어 호수 공원에 다녀왔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 땅에서 피어오르는 비릿한 흙냄새를 좋아한다. 훅 끼치는 으스스한 바람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빗소리를 좋아한다. 주변에 잡다한 소음을 지우는 빗소리, 우산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소리도 좋다. 그래서 우산 쓰고 산책하는 걸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운동장 두 바퀴 도는 게 유일한 운동이었는데, 비 오는 날도 멈추지 않아 몇몇 친구들은 비 오는 날에도 산책하던 친구로 기억했을 정도다.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을 체크하려고 날씨 앱을 켠다.


*산책스케지

공원에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비 오는 날 산책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누군가 우산 없이 빗속을 걷고 있다. 행색을 보니 이제 막 러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으니, 아마 처음부터 우중 러닝을 결심하고 나왔으리라.

지렁이는 생각보다 진짜 길다.

산책로에 커다란 두꺼비(개구린가?)가 뛰어들었다. 헙, 하고 작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주먹만 한 두꺼비를 앞질러 갈 자신이 없어서 뒤로 돌아 나왔다. 예전에는 같은 산책로에서 과장을 조금 보태서 축구공만 한 두꺼비를 만난 적이 있다. 정말 너무 커서 어딘가에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도대체 그렇게 큰 생명체가 공원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아무래도 두꺼비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2100 - 2140 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下)> 완독

진짜 하루키의 소설은 몇 번이고 머리를 짚고, 때론 '안돼ㅜㅜ 그렇게 전개하지 마...' 속상해한다. 그의 문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다 보면 다음 장면을 예측할 만한 힌트가 보이는데, 대부분 늘 내 예측이 틀리길 바라는 심정으로 읽게 된다. 도대체 그는 무엇인가.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원칙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쥐' 3부작이라 불리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나'와 동일인물이다. 앞선 작품들처럼 독립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양을 쫓는 모험>의 7년 후의 이야기를 그린 속편으로써의 특색이 짙다. 오랜 시간 그의 작품들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등장인물 '나'가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 이후 많은 작품에서도 1인칭 시점인 '나'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 남성이고, 나이는 다르긴 해도 비슷한 성정의 캐릭터로 그려지며, 또 대부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기에 모두 동일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주인공 '나'는 곧 10대의 하루키, 20대의 하루키, 30대의 하루키 작가 본인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주인공에 애정을 갖게 되는 거 같다. 마치 마블 세계관처럼 하루키 세계관의 멀티버스 같달까.


실제 작가는 60년대 일본에 일었던 반미, 반체제, 반전 등의 구호를 내건 학생운동('전공투공운동')에 참여했었다. 그가 지향했던 관념과 혁명의 세계가 어떤 것이었지 초기 삼부작에서 그가 상실한 것들에 대한 체념과 극도의 허무주의로 드러난다. '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본가로 돌아와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지고, '나'의 여자친구는 자살한다. 그 밖에도 누군가 왔다가 떠나간다. 누구도 어딘가 정착하지 못한다. 그런 상실감과 허무주의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 <노르웨이의 숲>이다. 그 소설이 출간됐던 시대의 배경과 관계없이 현재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것은 그가 청춘과 젊음, 그와 동반한 상실과 허무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 <댄스 댄스 댄스>는 <노르웨이 숲> 바로 다음 작품인데, '나'가 과거의 관념이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부지런히 '춤을 추는' 과정을 그린다. 즉 과거의 상실이나 절망에서부터 벗어나 자신이 머물러야 할 현실을 자각함으로써 스스로 완전한 해방을 실현하는 삶을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해된다. 나도 부지런히 춤을 춰야 할 때가 아닌가.


2200 - 2210 일기 쓰기


2210 - 2315 스페인어 공부


아까 분명 운동 끝나고 이른 저녁으로 떡볶이랑 김말이 튀김까지 야무지게 먹고,  초콜릿케이크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 스멀스멀(?) 배가 고파온다. 확실히 양이 늘었다. 야식으로 간단하게 뭘 만들어 먹을까, 아니면 참을까. (그다지 참아본 적은 별로 없지만)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바나나 하나로 극적 타결(?!)


2325 - 2430 독서 김초엽 <파견자들>


결국에는 파스타 해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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