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Dec 09. 2022

낯선 얼굴과 진짜 얼굴

모임에 나갈 때

-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야.

 소리인지 시선인지 내 얼굴을 간지럽혀서 고개를 돌렸다. 옆으로 이어진 테이블, 저만치 앉아 있는 ‘아는 언니’가 나를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소리였다. 자리가 꽉 찬 동네 술집은 시끌벅적했지만 그 말은 유독 또렷하게 둥실 떠올라 내 귀에 도착했다. 괜히 민망하고 화끈거렸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언니와 눈이 마주쳐서 그저 씩 웃어봤다. 변명이든 설명이든 말을 보태야 하나? 긴 테이블과 거친 소음들로 막혀 내 목소리가 닿을까 의심스러웠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열 명의 엄마들 모임. 과반이 모르는 얼굴들이다.

 같이 독서 모임을 하는 언니가 초등 천문대 팀 수업에 빈자리가 생겼다며 참가 의사를 물어왔다. 우리집 아이에게 물어보니 반기며 좋다고 했다. 월에 한 번씩이라, 그 주에 하는 수업부터 바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엄마들의 송년회 약속이 잡혀있단다. 아이들 수업하는 시간에 모이는 것이니 인사할 겸 오기를 권했다. 얼떨결에 온 낯선 자리였다.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로 나가는 자리는 매번 긴장된다. 별스럽게 보이거나 부족해 보여선 안된다는 부담감으로 꽉 끼게 옷을 입은 기분이다.

 언니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추켜세워주는 모양새이다. 책을 많이 읽는 엄마라, 그렇게 보였던가? 언니와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서 내가 책을 추천한 경우가 몇 번 있긴 했다. 그런데 말이지, 그게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칭찬으로 들릴까? 어쩐지 괴짜처럼 보이진 않을까 싶다. 사회성이 꽤 부족하다거나 하는.
 칭찬인지 아닌지 잠시 헷갈리다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상기시켜 본다. 아이의 원활한 교우관계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해야 했다. 어쩌면 토요일 밤에 외출해서 좀 들떴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보기로 한다. 웃음소리가 크고 맞장구 잘 치고 주량도 많은 호기로운 아줌마로.
 그렇게 모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고, 깜깜하고 얼얼한 공기를 밀어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정도면 꽤 사교적인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만족하며 종종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만난 낮선 얼굴들이 조금 익숙해진 듯 하다.




 다음 주, 다음다음 주 연말 모임이 연달아 잡혀있다. 12월은 보고 싶은 사람들과 궁금한 소식으로 채워 보려 한다.

 가끔 생각했다. 누굴 만나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내 모습도 맞추어 바뀌고 있지는 않은가? 카멜레온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때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현재를 사는 것도 괜찮은 일 같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하나씩 꺼내고 미처 몰랐던 상대의 모습을 하나씩 알아가고. 그런 게 사람 만나는 재미가 아닐까. 그래서 더욱더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느릿하게 커피를 즐기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