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에 관한 두 번째 글
커피를 자주 마시는 사람은 흔하다.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커피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런 아무개 중 한 명이다. 좋아하다 보니 친해지고 싶고, 즐기다 보니 직접 내려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이다. 그렇게 핸드드립 커피를 배우게 되었다. 자랑인지 부끄럼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침이면 꼭 커피 한 잔이 있어야 온전히 잠을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커피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그런 내가 핸드드립을 배운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 아니었을까 한다.
요즘엔 나처럼 커피에 빠진, 혹은 빠질 예정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서로 경험을 나누며 공감할 수 있을 거다. 당장은 주변에 없다고 해도 괜찮다. 핸드드립 커피를 설명하는 이 글을 완성하여 여러 사람에게 보인다면, 어쩌면 누군가는 관심을 표하고 궁금해하게 될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핸드드립을 배우게 되면서 커피의 여러 품종과 산지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되었다. 와인처럼 커피도 원산지가 다양하다. 이미 익히 알려진 곳으로 콜롬비아, 에디오피아, 케냐 등이 있다. 해발고도가 높고 아열대 기후이며 북위 25도와 남위 25사이의 많은 지역에서 커피나무가 자란다. 이 지역을 커피벨트 또는 커피존이라고 한다. 품종은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으로 나뉘는데 아라비카종은 풍부한 향을 지녀서 고급스페셜티에, 로부스타종은 카페인함량이 높고 재배가 용이해서 인스턴트 커피 제조에 주로 사용된다. 초반에는 여러 산지의 커피를 접해보다가 최근에는 과일향과 신맛에 끌려서 에디오피아 원두를 주로 구입하고 있다. 고소한 맛을 선호한다면 콜롬비아 원두를 추천한다. 케냐 원두는 호불호 없이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핸드드립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하다. 드립퍼, 서버, 종이필터, 드립주전자는 필수이고 초보자라면 온도계와 전용 저울이 더 있으면 편하다. 가장 핵심은 원두가루를 담아 커피액을 떨어뜨리는 드립퍼이다. 제조회사별로 칼리타, 하리오, 고노, 멜리타 등이 있다. 모양이나 추출구멍 개수에서 차이가 난다. 칼리타가 가장 기본이고, 향을 살려주는 하리오나 사용하기 편한 멜리타 등 각각의 개성이 있다.
자세하고 많은 배경지식들이 있지만 나도 깊이 알지는 못하고 장황해질 거 같아 이론은 이만 줄여본다. 우선 커피를 내려보도록 하자.
핸드드립의 순서를 차례대로 따라가보자. 첫째, 우선 커피 원두를 꺼내 갈아야 한다. (원두는 소포장 100~200g정도씩 신선한 것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집에 그라인더가 없다면 원두를 구입하는 곳에서 분쇄해달라고 할 수 있다.) 커피 한 잔에는 20g정도의 원두가 적당하다. 드립퍼를 살 때 따라오는, 원두를 덜어내는 작은 흰색 스푼을 하나 채우면 10g이 된다. 분쇄한 원두 입자가 작아질수록 진해지고 쓴맛도 잘 추출된다. 반면, 입자가 굵을수록 연해지고 향이 덜 우러날 수 있다.
둘째, 전기포트에 물을 넉넉히 끓여 드립주전자에 옮겨 담는다. 주전자에 물이 7~8할은 담겨야 손쉽게 물줄기를 조절할 수 있다. 물의 온도는 커피맛에 크게 영향을 준다. 에디오피아 원두라면 92~3도 정도로, 콜롬비아 원두라면 90도 이하가 적당하다. (친절한 원두 포장지에는 산지와 가공방식에 따른 적정한 물온도가 적혀있다.)
셋째, 커피액을 담을 서버위에 드리퍼를 올리고 그위에 종이필터를 끼운다. 필터를 뜨거운 물로 헹궈낸 후(꼭 필요한 과정은 아니지만 종이향을 빼고 서버를 데울 수 있다) 분쇄한 원두를 담는다. 드리퍼 옆을 툭툭 쳐서 원두가루가 평평하게 담기도록 한다. 그 다음은 물을 따를 차례이다.
넷째, 주전자물을 불림, 1차, 2차, 3차 로 네 번에 걸쳐 따른다. 중앙에서부터 되도록 일정한 속도와 굵기로 나선형을 그리며 원두를 고르게 적셔준다.(드립퍼에 직접 닿으면 추출이 되지 않고 물이 드립퍼벽을 따라 그대로 흐를수 있으니 유의한다) 불림단계에선 1:1.5로 (원두가 20g이라면 물은 30g) 물을 골고루 속도감 있게 따르고 30초간 기다린다. 적셔진 원두가 살짝 부풀어오르며 탄산가스를 배출하기도 할 것이다. 오븐속에서 빵이 구워지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여 일명 ‘커피빵’이라고도 한다. 잠시 응시하며 30초가 지났을 때 ‘1차’로 물을 붓는다. 역시 중앙에서부터 나선형을 그리며 가장자리를 향하다가 끝에 닿지 않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 된다. (물이 가장자리에 직접 닿으면 추출이 되지않고 리드를 따라 그대로 흐른다) 물의 양은 원두가 찰랑하게 잠길 정도로 약 70g쯤이 적당하다. 연갈색 거품과 그 아래 푹 젖은 짙은색 원두가루, 그 아래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커피물이 조화롭다. 오르골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거품이 다 꺼지기 전에 전에 큐사인을 들은 듯 다시 주전자를 들어야 한다. 2차, 3차는 1차와 같은 방식이면서 물줄기를 조금더 굵게 부어준다. 맛을 내는 주요한 성분은 이미 거의 추출되었고 양을 맞추기 위한 단계이다. 커피 한 잔 정도인 240g 내외가 추출되었다면 드립퍼를 치우고 커피액을 잘 저어 준다.
자, 이제 커피를 즐기면 된다. 에디오피아 원두의 향이 생생하게 올라오며 부드러운 신맛이 느껴진다. 가만히 음미하며 커피 산지에 대한 상상을 하고 뜨겁게 로스팅되었을 원두의 모습도 그려본다. 커피믹스나 캔커피같은 가공된 커피만 20년을 마시던 내가 뒤늦게 알게된 즐거움이다. 커피의 향긋한 냄새는 후각을, 모락모락 김은 촉각을, 진한 커피색은 시각을 만족시킨다. 굳이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커피를 내려마시는 날은 잠시동안 부르주아 계급이 된 마냥 여유롭다. 삶의 여유를 향기롭게 누릴 수 있는 취미생활로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