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분열
외국에 살면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은 대한민국의 이념 중심의 편 가르기이다.
특히, 유럽에서 좌파라고 하면 전적으로 보수주의를 비판하기보다는 보수주의가 원치 않게 낳는 부정적인, 편협한 결과를 피하기 위한 구체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좌파, 또는 진보주의 성향에 있더라도 의견차이는 용납이 된다. 예를 들어서, 기독교이기 때문에 동성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관점을 취할 수 있지만 환경보호나 기후 변화, 또는 이민자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는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또는 좌파이기 때문에 억압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열린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좌파이기 때문에 그에 포함되는 모든 관점을 수용하거나 또는 거부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한 것이다.
좌파라고 스스로 칭하는 친구들 중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취하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평화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수의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외면하거나 주권 국가의 '자기 방어'를 조건으로 대한민국의 개입이나 비판을 거부한다. 그리고 국내 정책에 관해서는 비차별이든 형평성 주장 등 열린 관점을 취하면서도 좌파 안에서 이민자에 대한 태도, 개방에 대한 태도는 엇갈린다. 그건 반도이면서 남북 대치 상황으로 인해 섬 같은 영토를 수호하려는 자연스러운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적인 정치 성향이 시사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기본적 토대의 위태로움이다. 한국 전쟁 후 빠른 성장을 추구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살 길에 찾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 점이 공동체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 성취와 목표 설정에 있어서도 배타적인 관점을 형성하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세계 경제 10위권을 맴돌면서도 저출산이나 높은 자살률 등이 시사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더 고립해 가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과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나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하지만 점점 도태되고 후퇴하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선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지 6년이 넘었다. 지금도 나의 위치는 불안하고 미비하지만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언제 나서야 할지, 나설 기회가 있을 땐 어떻게 대화를 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분명, 대한민국이 아닌 보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일상에 정착된 유럽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내 관점을 정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눈치 보지 말고 내 소신대로 한 번쯤, 언젠가는 해보자는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가 지지해 주는 나의 존재가 아닌 내가 선택하고 폭넓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더라도 한국인으로 살더라도 우리는 국경과 이념을 떠나서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개인적으로 마주치는 개인들과 때로는 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깨닫고 그것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나는 좌도 우도 아닌 그 틀을 바꿀 수도, 그 틀을 가지고 놀 수도 있는 독립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아우르는 법적, 국적 구조는 우리의 존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위함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내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권이 책임이 되고, 함께 연대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방식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