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시작할 때 정하지 못한 마음과 고민들
일본어를 접한 건 중학교 제2외국어 수업을 통해서였다.
겨울이었거나 기억 속의 무채색 같은 계절에, 영어의 알파벳과 같은 일본어의 히라가나·가타카나를 외우지 못해서 하교 시간에 홀로 빈 교실에 남아 빈칸을 채우던 장면. 빈칸을 다 채우고 교무실에서 일본어 선생님과 마주 앉았는데 갑자기 콧물이 나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나에게 조심스레 "내가 무서워요?" 묻던 선생님이 "콧물이 나네요?" 하고 화장지를 건네주던 장면이 서늘하지만 훈훈하게 기억된다.
필요한 걸 말로 할 줄 모르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제2외국어를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영어는 기본, 다른 외국어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영어 학원을 다니고 우연히 들른 서울국제도서전 장로신학대학 출판부 부스에서 받은 《최신 독문법》 《독어 원서 강독》으로 독문법 기초를 익히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 줄곧 제2외국어를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실망하는 데 질리기 시작할 때쯤, 동양권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국어와 일본어 두 언어 중에서 경제적인 건 중국어지만 왠지 하고 싶은 쪽은 일본어였다.
무엇보다 초반 흥미를 돋운 건 노지영 선생님의 〈히라가나 특강〉(https://youtu.be/TOaNd-rjaQg?si=fNa3EYRxkof-LI8C)이었다(히라가나 특강 3편, 가타카나 특강 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일본어를 쉽고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해당 영상을 시간차를 두고 두세 번 시청하면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익혔다.
상대적으로 사용 빈도가 적은 가타카나에서 모양이 비슷한 ン(n) ソ(so) シ(si) ツ(tu)는 여전히 헷갈리고 チ(chi)와 ケ(ke)도 구별해서 외워둬야 한다(치チ즈, 2단 케ケ이크…). コ(ko)와 요음 ユ(yu) ヨ(yo)도 쓰는 법이 은근 혼동되는 삼형제다(요음은 ヤ〔ya〕 ユ〔yu〕 ヨ〔yo〕 세 가지인데, 히라가나 や〔ya〕 가타카나 ヤ는 모양이 비슷해서 상대적으로 잘 외워지는 편이다). 덧붙여 ヲ(wo)는 히라가나 お(o), 조사 を(o)와 발음이 같지만 현대 일본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알아두고 넘어가기.
•공부 순서는 어떻게 정하는 게 좋을까?
일본어 공부의 첫걸음은 촉음·요음·탁음/반탁음을 포함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50음도(あ·い·う·え·お단)를 암기하는 것이다. 일본어 50음도를 검색하면 쉽게 나온다. 이 부분은 암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어려움 없이 암기를 하면 된다.
그 다음은 NHK World Japan 홈페이지 일본말 첫걸음(https://www.nhk.or.jp/lesson/korean)에서 총 48과 레슨별 PDF를 무료로 다운 받아 기초 회화 문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초 단어·문법·회화의 듣기·쓰기·말하기를 두루 공부할 수 있다.
•기초를 다지는 데 선생님이 필요할까?
처음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때의 목표는 잘하기보다 '매일 공부하는 습관 들이기'였다. 내가 수강했던 유료 수업은 매일 공부 인증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과제를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공부 일수를 늘릴 수 있었다.
아이패드 굿노트에 PDF 자료를 불러와서 필기하고, 수기로 별도의 노트 정리와 음성을 녹음하며 공부했다. 녹음한 음성을 들어보니, 알고 읽을 수 있는 발음도 제대로 보지 않고 틀리게 발음하는 나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다. 틀린 발음은 (아이폰의 경우) '녹음 편집' 대치하고 싶은 부분으로 이동해서 '대치' 버튼을 누르면 기존의 음성이 새로 말하는 음성으로 대체된다.
그날그날 공부 자료를 숙지한 다음 녹음한 음성을 들으니 틀린 발음이 귀에 들어왔다.
음성을 녹음할 때는 빠르게 읽는 것도 좋지만 정확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머뭇거리다 정적이 흐르는 구간을 절약하고 싶다면 '무음 구간 건너뛰기' 하면 된다. 그렇지만 음성과 음성 사이 긴 공백을, 빠르고 정확한 발음과 소리를 입 밖에 내어보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 하나의 주요 미션이기도 하다.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음 구간 건너뛰기'는 틀린 부분을 체크할 때 활용하면 시간을 조금이나마 절약할 수 있다. 단어든 문장이든 그날그날 배운 것과 공부한 부분을 소리내어 말해보자.
나는 공부의 시작에 선생님을 두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어 교육 블로거의 유료 강좌를 수강했다. 덕분에 NHK World Japan 일본말 첫걸음 기본 자료 외 부가 자료를 접할 수 있었지만, 선생님을 선택할 것인가 교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NHK 홈페이지에 게재된 자료를 활용해서 듣기·쓰기·말하기를 두루 연습하며 기초를 다지고 독학해서 JLPT 시험 준비를 하고 자기 수준에 맞게 점차 난이도를 높여가는 학습자도 있다.
•어떤 교재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
교재 선택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하는 문제다. 나의 일본어 선생님은 자신에게 맞는 교재를 선택해서 ‘개떡같이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택하고 시작해서 끝까지 하는 단순함을 실천하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을 그냥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언어를 공부하는 일에는 다양한 모습의 노력, 때때로 공부법과 방향에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선택도 노력 중 하나고 선택에는 시간이라는 구체적인 책임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지만 심각해지지는 말자.
시간의 흐름을 따라 꾸준한 공부 흐름을 만들면서, 조바심 내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다. 우선 선택한 교재를 한 권 끝내는 일부터.
일본어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정하지 못했던 마음과 고민에 대해 부족하나마 나름으로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아래는 덧붙이는 글.
•원어민 친구를 사귀면 도움이 될까?
원어민 친구를 사귀면 일본어를 자주 접하고 사용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친구를 사귀는 일은 관계를 맺는 일이기 때문에 그 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도움되는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원어민 친구를 공부의 도움닫기로만 생각해서는 도움이 안 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서 점차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일본어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것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언어가 다를 뿐이고 마음만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처럼 공통점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와 나의 일본 친구는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좋아하는 한국 시인의 시 가령 김선오 〈돌과 입맞춤〉, 김은지 〈매일 마침내〉, 김소연 〈코핀 베이〉, 황인찬 〈발화〉 등의 텍스트를 필사해서 보내면 친구는 하이쿠나 시를 읽은 감상으로 화답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고"로 시작하는 여름과 우리들의 무엇을 보내는 자우림의 〈반딧불〉 노랫말을 나눴다.
일본 친구가 보내준 반딧불(ホタル호타루) 사진.
끝으로 한 가지 꿀팁.
라인에서 이 친구를 친구 추가하자. 채팅방에 친구를 초대할 때 같이 초대하면 된다. 한국어 통역봇은 한국어를 일본어로, 일본어를 한국어로 통역해준다. 편리하고 고마운 기능이지만 공부하는 데 '쉽다'는 것은 단점이기 때문에 적절히 활용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향상심과 내 안에 있는 조금의 행복이 맞물려 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부진함에 괴로워하지 않고 자기 안에 행복한 마음을 키워가는 쪽으로 즐겁게 공부하면 좋겠다.
아래는 쪽프레스 〈단편만화 창작 워크숍 3기〉를 통해 그린 그림.
영혼의 일본 여행을 상상하는, 좋아하는 장면.